나를 살리는 시시한 루틴의 힘

by 카인드마마

나는 종종, 아무 이유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신없이 일하던 시절에는 그런 일이 덜했던 것 같다.

나에게서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질 때마다, 나는 소속 없는 이방인이 된 듯한 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사실 세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생산성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는 숲보다는 나무를, 나무보다는 아직 싹트지 못한 땅속의 씨앗을 바라보며 공허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있다면, 이제는 이런 무기력을 오래 두고 보지는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분이 다운되는 첫째 날은 예민해지고, 쉽게 화를 내게 된다. 내 행동과 말투, 표정. 그 모든 것에 빨간불이 켜진다.

둘째 날이 되면 나의 감정전선에 예고 없이 찾아온 소나기를 눈치채게 된다. 그러면 서둘러 우산을 찾아 쓰듯, 내 마음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살핀다.

셋째 날이 되면 우비와 우산, 장화까지 챙겨 신고 이 소나기가 잘 지나가길 기다리며 조금씩 마음을 다독여본다. 이 셋째 날은 남편에게 '나 사실 우울했어' 고백을 하는 날이다. 그러면 그다음 날 거짓말처럼 화창한 날이 찾아온다.


이런 일들의 반복을 살펴보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루틴이 무너지는 때다.

나에게 루틴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자, 내 삶을 끌고 가는 동력이다.

계획하기를 좋아하지만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늘 계획을 '실행'하는 것에 실패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루틴 안에 나를 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맞는 루틴을 만들기까지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지금도 수정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수정하게 될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나만의 기준은 명확하다.

루틴은 '이것도 못 하면 사람도 아니지' 싶을 만큼 시시하고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등원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뒤, 물 한잔과 삶은 달걀 두 개, 바나나 하나로 시작하는 나의 아침식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늘 하루 내 몸에 좋은 것들만 들어가길 바라는 의식 같은 것이다.

이때 펼치는 바인더는 단순한 스케줄러가 아니다. 싹트지 못한 씨앗 같던 내 일상에 오늘 하루 어떤 물을 줄지 결정하는 나만의 설계도다.

오늘 계획이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영어공부는 내가 오늘의 루틴을 얼마나 잘 실행할지 판가름해 주는 가장 중요한 장치이자, 성취감을 주는 최고의 인풋이다.


노래를 크게 틀고 청소기를 돌리는 소음 속에서 나는 비로소 무기력이라는 정적을 밀어낸다.

나를 위해 차린 성의 있는 점심 한 끼는, 내가 더 이상 '잉여'가 아닌 내 삶의 '주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이 루틴은 절대 영원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맞지 않기도 하고, 경이롭기까지 한 나의 게으름이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날도 적지 않다.

이 루틴이 깨어지며 나타나는 현상은 아이들이 등원 후 바로 나타난다.

그것은 소파에 벌러덩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 되면 먹는 것도 엉망이 된다. 아이들의 간식통을 뒤져 아무것이나 먹고, 많이 먹게 된다.

쓸데없는 TV프로그램을 보며 가짜 도파민에 절여져 있다가 퍼져버린 내 모습에 금세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긴다.


내 삶에 루틴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나를 방치하고 있을 때,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일기예보이자 신호등이기 때문이다.

루틴이라는 선명하고 강력한 가이드라인 덕분에 나의 방황은 결코 3일을 넘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루틴은 단순히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나를 건져 올리는 '구조선'이자 '나를 살리는 일' 그 자체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그것에는 정답이 없고 정도도 없다.

나의 방식을 가족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나를 위해 설계된, 단 하나의 정답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삶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며 걸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도 조용히 다짐해 본다.


내가 매일 아침 아이들을 살피듯,

내 마음의 안부도 부지런히 살피며 살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