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부정의 힘'을 믿는다.
내가 가진 불안의 밑바닥을 응시하는 순간, 오히려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나는 오랫동안 '긍정적인 마인드'를 믿었다.
불안할 때마다 '괜찮아, 좋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더 쉽게 무너졌다.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인 것 같다.
뿌리가 단단한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이제 막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 작은 묘목에 불과했다.
앞뒤 없이 긍정적이기만 하기에는 내게 닥친 비바람이 너무 거셌다.
비교적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남편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혹은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해주었다.
들을 때는 속상하고 거슬렸지만, 그런 조언이 상황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고 나서야 나는 '부정의 힘'을 받아들였다.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생각났다.
내 친구는 나보다도 불안도가 훨씬 높은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며 불안해했다.
그때 친구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에겐 부정의 힘이 있어!
넌 이미 최악을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더 잘 대비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며 불안해할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친구가 나보다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이 현명했음을 느낀다.
내게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대부분 친정의 일이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때에 나의 한계도 정해두었다. 돈이든 역할이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하고 경계를 분명히 하는 연습을 했다.
놀랍게도 상황은 한 번도 최악의 상황까지 번지지 않고 그전에 진화되거나, 아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어놓은 선을 확인하는 순간,
나를 집어삼킬 듯하던 두려움은 정체 모를 안개에서 대처가능한 실체로 변했다.
결국,
두려움과 불안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공포일 뿐이었다.
내가 상상으로 최악의 풍경을 대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자, 나를 집어삼킬 듯하던 거센 비바람이 점점 온순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요해진 비는 내가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양분이 되어 주었다.
친정의 일은 여전히 고단한 숙제지만, 그 덕분에 나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그늘을 내어줄 나무로 자라고 있다.
아직도 힘든 일이다.
평온한 일상에 비바람이 불고 마음에 파장이 일어나면 그 순간을 도저히 아무렇지 않게 지날 수가 없다.
하지만 일의 최악을 미리 생각한다는 것은 '부정'적이라는 단어로 속박하기에는 너무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사십 대가 되고 나니, 이제야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든다.
나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이 여행에서, 나는 '부정의 힘'이라는 지도를 하나 얻었다.
그 지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길을 잃은 기분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느 것이 내게 맞는 것인지, 그것이 진짜 내 것인지 자꾸 의심하고 시험해보아야 한다.
사십 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생 여행의 풋내기가 되었다.
비바람은 여전하겠지만, 이제 내 손엔 나만의 지도가 들려있다.
앞으로 닥칠 수많은 시간을 견뎌내며,
그것으로 나의 의미 있는 여행이 완성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