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쓰는 편지] 엄마의 고단한 일터는, 내게 비밀의 놀이터였다
엄마, 기억나?
엄마가 청소하러 다녔던 목욕탕 말이야.
몇 해 전, 오빠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빠가 깜짝 놀라며 물었어.
엄마가 목욕탕 청소하러 다녔던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말이야.
너무 어려서 몇 살 때 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겠어.
늘 엄마를 따라다녔잖아.
나보다 다섯 살 많다고 언제나 어른인 척하는 오빠인데,
오빠는 모르는,
엄마와 나만의 기억이 있다니 괜히 좋았어.
게다가 그건, 오빠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여탕에서의 이야기잖아!
그 목욕탕이 어디쯤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목욕탕 카운터만은 눈에 선해.
요즘처럼 넓게 오픈되어 있지 않고,
작은 창을 통해 돈을 내고 들어가던 그 모습.
엄마랑 손 꼭 잡고 가서, 목욕탕 앞에서 엄마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지.
고개를 푹 숙이고 카운터 아래로 소리 내지 말고 들어가야 한다고.
아마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데려오는 걸 싫어해서였겠지?
난 말 잘 듣는 아이였잖아.
엄마가 주인아주머니와 인사하는 동안 나는 몰래몰래 잘 숨어 들어갔지!
영업이 끝난 목욕탕.
아무도 없는 텅 빈 목욕탕은 온 우주에 엄마랑 나, 단둘만 있는 것 같았어.
엄마의 고단한 일터였던 목욕탕은 내게는 비밀 놀이터였어.
후끈하고 습한 그 공기가 아직도 기억이 나.
엄마가 솔을 들고 청소를 시작하면 나는 목욕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았지.
그러다가 미끄덩 넘어졌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네.
탕에 물을 뺄 때도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어.
텅 빈 목욕탕에 물 빠지는 소리가 거대한 폭포수처럼 들렸어.
못 다 빠진 물을 바가지로 퍼 내다가 바가지가 바닥을 긁으며 내는 '드르륵' 소리가 목욕탕 안에서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어.
내가 내는 말소리도 목욕탕 안을 가득 채우며 울렸지.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의 메아리를 나만큼 잘 아는 아이는 없었을 거야.
물이 다 빠지고 나면 후끈하던 목욕탕의 온도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어느새 서늘한 기운이 들었어.
그때 들려오는 엄마의 솔질 소리.
쓱쓱 싹싹.
엄마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반짝반짝.
난 그런 엄마가 마법사 같다고 생각했어.
엄마의 솔질은 마법사의 지팡이 같았지.
그렇게 청소가 끝나면 엄마는 따뜻한 물로 나를 씻겨주고, 우린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
목욕탕에서 나오면 항상 손끝이 쪼글쪼글해져서 그것마저도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어.
여름밤에는 여름의 향기가 좋았고, 겨울밤에는 따뜻한 호빵 한 조각이 그렇게 행복했을 거야.
엄마에 대한 기억이 몇 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엄마와의 목욕탕은 생생하게 기억이나.
내가 꽤나 어렸을 때였을 텐데 말이야.
몇 해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였어.
선우 엄마가 아들 몰래 목욕탕 청소를 하러 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선우 엄마는 어린 딸은 이웃집에 맡겨두고,
고등학생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목욕탕 청소를 하러 갔어.
그런 선우엄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더라.
"우리 엄마도 목욕탕 청소를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시대도 어쩜 그렇게 똑같지? 내가 1983년 생이니 선우 동생인 진주와 나이가 비슷했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목욕탕 청소를 하던 엄마의 나이는 많아 봐야 30대 후반쯤이었겠어.
지금의 나는 마흔셋인데..
목욕탕청소라니.. 나는 엄두도 못 낼 일이야.
아픈 몸으로 그렇게 고생하며 우리를 키웠어.
엄마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엄마에게 얼마나 고마워해야 그 마음이 다 전해질까?
고마워 엄마.
엄마의 목욕탕 청소는 고단한 삶의 터널이었겠지만,
그 덕에 나만 간직하는 엄마와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어.
카운터 아래로 숨어든, 우리만의 목욕탕의 밤.
그 모든 시간을 나는 사랑해.
엄마, 하늘나라에서는 목욕탕 청소 하지 않지?
그 일은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주었으니,
이제는 그저 편안하게, 행복하게 지내기만 했으면 좋겠어.
오늘 밤 엄마와 목욕탕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꿈에서도 한번 나타나지 않는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정말 편안하고 행복한가 봐.
그래서 다행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리워.
사랑해, 나의 모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