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꿩대신 닭이 아니었어

[선물] 나의 방파제

by 카인드마마

그때의 나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한없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엄마가 없으면 이모가 엄마 대신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이모가 세 분이나 있었다.

엄마 대신이 셋이나 된다니, 그 말은 묘하게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나도 자연스레 이모를 찾았다.

특히나 부산에 사는, 우리 박미숙씨를.


부산에 보내달라고 졸랐지만, 새엄마는 남의 집에 폐 끼치면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남이라고? 이모가 어떻게 나에게 남일 수 있을까.

결국 용돈을 모아서 몰래 기차를 타고 가서 이모를 보고 오기도 했다.


이모는 항상 나를 바라봐 주었다.

내 고민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의 마음을 먼저 보려 했다.

대학을 갈 때도 새엄마는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과를 가라고 했지만, 이모는 달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인지, 그 길을 걸으면 내가 지치지 않을지를 먼저 생각해 주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전공할 수는 없었지만, 그때 이모가 건넨 따뜻한 응원을 잊을 수가 없다.


외갓집 식구들을 만날 때면 내게 '엄마 기억이 나느냐'고 물었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나의 대답에 외삼촌과 다른 이모들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이모는 나에게 그런 질문 대신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 네 자매가 청도에 모여서 맛있는 것을 해 먹고 수다를 떨며 자주 모였다고 했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고 나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고, 아쉽다고도 했다.

엄마는 나물을 참 잘 무쳤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나물 무치는 것을 어려워하던 내게 묘하게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딸은 엄마의 손맛을 물려받기 마련이니 나도 잘할 수 있을 거야! 하고 말이다.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웃겨 주었는지, 가난했지만 얼마나 웃으며 살았는지 듣다 보면 아빠에 대한 원망도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몰랐던 엄마의 세계가, 이모의 이야기들을 통해서만 비로소 내 안에서 재생되었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람은 이모가 유일했다.


이모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마음의 기둥을 세워주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할 때면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고, 내가 마음에 욕심을 두어 불행해지지 않도록 내려놓음의 가벼움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모는 내 마음에 미리 연고를 발라주는 사람이었다.

그 연고 덕분에 삶의 풍랑에 생채기가 나도 새살이 빨리 돋아났다.

이모가 가르쳐준 '내려놓음'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내가 세상을 마주하는 가장 단단한 무기가 되었다.


오빠와 아빠가 등을 돌리고 지낼 때면 나는 늘 그들 사이에 끼어 마음이 갈가리 찢어졌다.

두 사람의 감정이 휘몰아칠 때마다 내가 그걸 해결해야 한다고,

우리 가족이 다시 평온해지는 건 내 몫이라고 믿었다.

그때 이모는 단호하면서도 다정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해결할 일이 아니다. 해결할 수도 없어. 둘의 문제를 네 마음에 얹어두지 마라. 그건 그들이 해결할 문제야."

이모 말이 맞았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 깊은 늪으로 빠져버리기만 했다.

그 말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이모는 흔들리지 않고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 말 한마디가 그때의 나를 얼마나 구해냈는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모는 엄마가 나에게 남겨 준 유일한 어른,

길을 잃지 않게 비춰주는 등대,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였다.


방파제...


그러고 보니 이모의 횟집 이름이 <방파제>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가 보다.


광안리에 있는 이모네 횟집에 가면 가게 한쪽에 작은 방이 있었다. 방 입구에는 벽돌과 나무판을 쌓아 만든 소박한 책장이 있었고, 쿰쿰하고 정겨운 먹냄새와 따뜻한 방바닥은 한겨울 추위도 단숨에 녹이는 듯했다. 그 방은 다정하고 온화한 이모를 꼭 닮아 있었다.

이모는 거기서 붓글씨도 쓰고, 난도 쳤다.

멋진 글과 그림을 담은 부채를 만들어 선물해주기도 했는데,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그 부채를 참 좋아했다.

'예원'이라는 호를 가진 이모는 늘 그렇게 멋져 보였다.

방 한쪽에는 판소리북도 있었다. 그건 이모부의 물건이었다.

웃으면 눈이 사라져 버리는 사람 좋은 인상의 이모부가 북을 치며 소리를 하고, 이모는 난을 치는 이 장면은 나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이모와 이모부는 고성에 '동시동화나무숲'을 만들어서 매년 '열린아동문학' 시상식을 주최하고 있다.

동시와 동화, 나무와 사람이 함께 온기를 나누는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이다.


이모는 나에게 정말 '어른'이었다.

내가 닮고 싶은 어른.

이모의 삶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 싶었고, 그 발자취가 남기는 따뜻함을 내 눈으로 보며 자연스레 이모를 존경했다.


이모는 엄마 대신이 아니었다.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남기고 간 빈자리에 가장 먼저 바람막이가 되어 준 것은 이모였다.


이모는 내게 무엇을 '대신'한 것이 아닌,

온전한 나의 '나무'였다.


나는 요즘도 마음이 헛헛하거나 힘들면 이모에게 전화를 한다.

이모 목소리를 듣고 나면 내 고민은 언제나 작아지고 가벼워진다.


이모는 내가 좋은 남편과 시부모님을 만나고,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사는 것을 보면 신통방통하다고 한다.

이제 내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며 대견해하고 감격스러워한다.


이모는 알고 있을까?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이 이모라는 사실을.



정말 그렇다. 이모는 꿩 대신 닭이 아니다.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내게 우주를 준 사람.


나는 나의 이모를, 가슴 깊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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