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몰랐다.

[죽음에 대한 사유] 십 년을 번 사랑의 거짓말

by 카인드마마

엄마는 몰랐다.


아빠는 엄마의 병을 아는 순간, 외갓집에 함구령을 내렸다.

“자기가 백혈병 걸린 거 알면, 내일 당장이라도 저세상 갈 사람입니더. 집사람한테 절대 말하지 마이소!“


할머니 이외 다른 식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다 보면 사소한 말실수가 나올 수 있으니

아빠가 그마저도 철저히 막은 것이다.


엄마의 병을 아는 사람은 아빠와 할머니, 그리고 외갓집 식구들이 유일했다.


그 덕분인지 엄마는 일 년도 못 살 거라는 시한부 선고에도 십 년을 더 살았다.

하지만 덕분에 집에서 환자 대접은 받을 수 없었다.


아빠는 엄마의 투병을 회상하며 내게 여러 번 말했다.


“치료하러 가면 일부러 내가 침대에 드러 누웠제.

‘니가 무슨 환자고?! 내가 더 아프다. 비키라!‘ 카면서.

척추주사가 그기 엄청 아프거든? 주사 맞을라카믄 타이밍 맞차가 허벅지를 콱 꼬집어뿟지.

병원사람들이 저런 미친놈이 다 있노 그랬을끼야.

그래가 엄마 없을 때 조용히 부탁했지.

애들 엄마가 지 병을 모르니까 다들 모른 척 쫌 해 달라꼬.

병실 사람들이 다 암환자였거든.

사람들이 아빠 보고 다 대단하다 캤다아이가~.”


아빠의 연극 덕분에, 엄마는 자신이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공포 대신 아빠와 투닥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었다.

아빠는 무용담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아픈 아내에게 병을 감추며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아빠의 삶도 아픔과 상처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외갓집 식구들은 007 작전처럼 엄마의 투병을 도왔다.

큰 이모는 좋은 고기, 몸에 좋은 음식을 사다 날랐고,

삼촌은 한 달에 한 번씩 한약을 지어 보냈다.

온 식구가 무엇이든 좋은 것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에게 보내왔다고 했다.

모두가 자기 몫을 하며 엄마를 살리려 애썼다.


그때 우리 집은 가난해서 다른 치료는 꿈도 못 꿨다고 한다.

시한부 선고 뒤에도 오로지 약에만 의존했고,

엄마가 그렇게 오래 산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모는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느그 엄마는 진짜 미련 곰탱이었데이.

그렇게 병원을 다녀도 자기 병을 눈치도 못 챘거든.

어느 날은 병원에 갔다 와서 이모한테 뭐라 카는지 아나?

'우리 교수님 환자들은 전신만신 다 암환자데이~' 그 카더라.

그래도 자기가 암이라는 생각은 못했던 거라.

얼마나 둔하노 그래!

그 덕에 오래 살았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빠와 외갓집 식구들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믿었다,

엄마가 몰랐기에, 의사의 예상을 훨씬 넘어 오래 살았다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내가 마흔을 넘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정말 몰랐어야 했을까?


엄마가 세상과 이별하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겨울의 찬 공기가 물러가고, 봄의 기운이 스며들던 3월의 마지막 날 밤.

온 가족이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 엄마 이상하다!!"

오빠의 외침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이 이상했다.

미동이 없었고,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의 뺨을 때렸지만, 엄마는 의식이 없었다.


엄마는 응급실로 실려갔다.


늦은 밤, 어린 나는 큰아빠 자전거 뒤에 태워져 병원에서 집으로 보내졌다.

큰아빠의 허리춤을 꼭 잡고 돌아오는 길.

뭐가 뭔지 모를 두려움에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다.


그날의 밤, 파티마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금 전까지 집 안을 채우던 봄밤의 향기는 온데간데없었다.

큰아빠의 허리춤 사이로 들이닥친 밤공기는 목이 멜 만큼 메케하고,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탁했다.

그것은 여덟 살에 처음 마주한 이별의 공기였다.


그렇게, 엄마와의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서로에게 작별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엄마는 정말 본인의 병을 몰랐기 때문에 10년의 시간을 더 할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엄마가 알았다면,

비록 삶은 짧았을지라도

남은 시간의 의미는 더 깊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죽음 이후로 오래도록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죽음이 오는 것을 모르는 채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 행복일까,

아니면 알고서 받아들이는 게 삶의 진실일까.'


그 질문은 아직도 내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 있다.


죽음은 도대체,

어떻게 와야 하는 것인가.


엄마는 정말,

몰랐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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