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단절] 용기조차 필요 없었다.
결혼 후 네 번의 유산 끝에 어렵게 첫아이를 품었다.
여러 번 유산한 탓에 남편과 나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아이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임신 5개월이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허리가 아파 서울 병원에 가야 하는데 길을 잘 모르니 나에게 안내를 해 달라고 했다.
아빠와 엄마의 사이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쩔쩔맸다.
서울역으로 엄마를 마중 나갔다.
친구와 함께 온 엄마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고 있었는데, 엄마의 태도가 이상했다.
자꾸 비싼 차가 아니냐며 이리저리 차를 살폈다.
그때 내 차는 2천만 원 남짓한 국산차였다.
병원 진료를 보고, 주사 시술까지 받게 되었다.
시술대 위가 추운지 엄마는 많이 떨었다.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담요를 덮어 주고 차가워진 엄마의 손을 주물렀다.
엄마가 그 손으로 무엇을 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엄마의 착한 딸이 되고 싶었다.
시술이 끝난 후 엄마와 엄마의 친구를 서울역에 데려다주려는데,
엄마가 말했다.
"너희 집으로 가자."
척추가 찌릿할 만큼 심장이 서늘해졌다.
엄마는 예전에 내 원룸에 왔을 때도, 목적을 달성하고 갔다.
그 기억이 떠올라 순간 두려움에 숨이 막혔다.
그 무렵 나는 한강변의 아파트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대출을 많이 받았고, 친정오빠의 도움도 받아 마련한 집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핑곗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엄마와 엄마의 친구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집을 훑어보고,
창밖을 내다보며 기가 막혀했다.
엄마는 내가 이사할 때마다 등기부등본을 떼어 확인해 온 듯했다.
내 명의의 집이 생긴 것을 확인하고, 그 집을 아빠가 사주었다고 확신하고 온 것이었다.
아빠에게 받은 위자료가 탐탁지 않았던 엄마는 모든 것을 못마땅해했다.
억울했다.
아빠 도움으로 산 집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엄마는 머리가 아프다며 약을 사 오라고 했다.
엄마를 집에 두고, 약을 사러 나갔다 돌아왔는데,
엄마가 없다.
집안에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그 불안한 직감은 결국 나를 주저앉히고 말았다.
집에는 아빠가 부도가 난 후 피해자들에게 받은 합의서가 있었다.
재판준비를 위해 아빠가 나에게 맡겨놓은 중요한 서류였다.
그 서류가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사라졌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주 화를 내고, 우리를 때리긴 했어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엄마는 의리는 지키며 사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 서류가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내게 있다는 걸, 엄마는 몰랐다.
언제나처럼 나의 공간을 마음대로 뒤졌을 것이고,
옷장 속에 넣어 둔 그 서류가 엄마 손에 닿았을 테다.
그날 밤,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처음으로, 따지며 대들었다.
어렵게 임신한 딸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내가 어떻게 아빠 얼굴을 보냐고
목이 터져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내 고함소리에 엄마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잘 먹고 잘 살라고" 했다.
그 말에는 비아냥도 없었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서 느껴본 가장 차가운 순간이었다.
엄마는 그 후, 같이 왔던 그 친구와 또 아빠 몰래 비행기를 탔다.
아빠가 돈을 얼마나 벌었나 염탐하고, 으름장을 놓으며 전쟁을 이어갔다.
사기로 잃어버린 집 세 채가 생각나 억울해 견딜 수 없었던 걸까,
아빠를 만나 흘려보낸 엄마의 세월을 돌려받고 싶었던 걸까.
엄마는 그 일이 자신을 더 망가트리는 것인 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날의 사건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어려운 임신기간이었지만,
아파서 서울에 온 엄마를 위해 기꺼이 운전대를 잡았다.
몇 번의 유산을 해도, 단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은 엄마였지만,
엄마를 이해하려 애썼고,
여전히 엄마의 딸이 되고 싶었다.
나는 평생을 엄마라고 불렀지만,
엄마는 나에게 엄마일 수 없었다.
그날을 끝으로,
엄마와 나의 인연도 완전히 끝났다.
평생을 망설였던 '절연'이라는 선택지는 그날 밤 완성되었다.
엄마와 연을 끊는 것은 나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나는 용기조차 필요 없었다.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을 만큼,
나는 엄마를 원망했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비슷한 뒷모습만 보아도 심장이 멎는다.
비슷한 음성이 어디선가 들려오면 내 몸은 고장 난 기계처럼 굳어버린다.
대구에 갈 때면 혹시나 마주칠까 불안함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엄마라는 두려움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그리운 나의 엄마를.
나는 이제 용기를 내고 싶다.
두려움과 이별하고,
그리움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단 한 발의 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