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7. 이상한 회사 7
그게 다였다. 그토록 기다렸던, 4일만에 처음 본 부장은 '에에~, 오후에!'라는 말을 끝으로 더욱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서류들을 정리했다.
딱총 : "...네네. 오후에 뵙겠습니다."
인사담당자분과 함께 뻘쭘해진 나는, 부장의 등에 대고 인사를 하곤 자리로 돌아왔다. 부장의 행동을 이해해보려 현재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했다. 회사의 다른 사람들처럼 긴 대화를 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긴 휴가를 마치고 온 상황을 감안했을때, 나에 대한 행동이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려했다. '오후에!'라는 말을 들었으니, 오후에 따로 인사하는 자리나 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거라 믿었기에 자리에서 다시 시장조사를 했다.
사실, 전에 본사 매니저와의 미팅에서도 나는 한국 지사 직원들이 마케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고, 그때 매니저는 내게 말했었다.
매니저 : "딱총, 걱정하지마. 너랑 일할 팀의 부장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고, 그는 마케팅의 필요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가 사무실에 복귀하면 대화를 해봐."
그의 말을 믿고 오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또 홀로 먹을 점심시간이 찾아왔고, 밥을 먹으러 사무실을 나왔다. 사무실이 있는 곳은 직장인들이 모두 쏟아져 나오는 상권이었으므로, 혼자 2인 테이블을 잡고 밥을 먹는것도 식당에 매우 미안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타이밍인 12시 40분경까지 무작정 걷기로 했다. 딱히 오피스 건물들 말고는 볼 것은 없지만, 그래도 걸어야만 했다. 걸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부장이 오후에 나를 불렀을 때 어떠한 것들을 물어볼지, 앞으로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등등, 오후에 부장과의 미팅을 준비했다.
12시 40분이 넘어 대부분의 식당에 사람이 빠졌고, 홀로 앉아 먹을 수 있는 1인 메뉴가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1시가 되었지만 사무실에는 인원 절반이상이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회사다. 4일내내 먼저 어디로 전화를 거는 직원도 없고, 모여서 미팅을 하는 사람도 없다.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서만 답할 뿐, 바쁜 기색이 없는 회사의 분위기... 하지만 매출은 심각하게 빠지고 있는 지사... 알아갈수록 이 회사가 이해 되지 않았다.
2시가 되어서야 부장은 반말남과 함께 사무실로 복귀했다. 둘이 밥을 같이 먹은 모양이었다. 부장이 사무실로 도착할 동안 시장조사한 자료들을 좀 더 보기좋게 파워포인트로 정리했다. 내가 조사한 내용들이 맞는지 틀린지도 궁금했고, 현재 경쟁사들과의 원가 경쟁력과 같은, 현업에서 뛰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질문으로 정리했다. 추가로, 마케터에게 원하는 영업쪽에서의 바람,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물어보기 위한 질문리스트를 따로 적어두었다.
부장이 들어온 후, 오후 4시가 다 되어갔다. 모니터만 2시간 넘게 쳐다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오전에 있던 몇몇 사람들의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외근인가 싶었다.이 정도 시각이면, 부장이 휴가를 다녀와서 급한 불들은 다 끈게 아닐까 싶어 부장 자리로 갔다. 꺾여있는 파티션을 지나 부장의 자리가 보였고, 부장은 자리에 없었다. 켜진 모니터로 보아, 담배를 반말남과 피고 오는 모습을 오전에 보았기에, 담배를 피러 간게 아닐까 싶어 자리로 돌아왔다.
오후 4시 30분이 넘었다. 이 때부터 뭔가 이상함, 약간의 쎄함이 느껴졌다. 부장은 돌아오지 않았고, 반말남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사실 오늘부터 짜놓은 스케쥴이 있었다. 시장조사를 위해 오프라인 매장들을 돌아볼 계획이었고, 본사 매니저에게만 보고해도 되긴하지만, 한국 정서상 같은 팀 영업부장에게 스케쥴을 보고해달라는 인사 담당자분에 말에 따라, 부장을 기다리고 있기도 한 것이었다.
인사 담당자분 자리로 가 물었다.
딱총 : "저, 혹시, 부장님은 언제 들어오시나요? 아까 오후에 보자고 하셨는데,"
인사 담당자분은 부장자리를 살펴보곤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반말남에게 물었다.
인사 담당자 : "00씨, 부장님 혹시 어디 가셨나? 오후에 딱총씨 보기로 했거든?"
반말남은 인사 담당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답했다.
반말남 : "부장님 퇴근했는데?"
'그래 이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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