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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총 Jan 12. 2023

35살, 나는 해고당했다.

Ep 42. 지옥에서 나오며

"한국에서 마케팅 매니저를 뽑지 마십시오."


HR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내 마음을 전달했다. 이 다음, 그리고 또 다음에 입사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않길 바라는 마음에, 본사에게 보내는 메일엔 몇 가지 바라는 사항을 적었다.


첫째, 마케팅 1년 예산을 지정할 것.

이 회사는 업력이 수십년이 넘은 글로벌 회사다. 영업은 고객사를 만나든, 발주처리를 하든 루틴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업무는 별다른 비용없이 영업사원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다. 허나 마케팅은 그렇지 않다. SNS를 하거나, PR을 하거나, 소위 포스터를 만들어 광고를 하더라도 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떠한 예산도 배정받은게 없는 상황이라면 루틴하게 돌아가야할 마케팅 프로그램들도 하나하나 예산 승인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 곳은 일단 영업이든 마케터든 예산이 주어진게 없었고, 신청하는 예산마다 몇 달이 걸렸다. 그 몇 달 후 예산이 승인나지 않으면 또 다른 플랜으로 예산신청을 하고, 그렇게 1년을 허비할수도 있는 곳이었다. 이러한 본사 행동에 지친 지사 직원들은 예산 올리기를 포기해버렸고, 이는 비즈니스 악화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둘째, 한국지사의 프로그램 제안을 받아들일 것

이 회사는 글로벌 NO.1 회사다. 단, 한국 시장 진출을 다른 나라 대비 늦게 진행한 영향으로 한국시장의 선두주자는 글로벌에서는 영향력이 없는 회사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회사가 2위도 아니었고, Best 5에 간신히 드는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시장 장악력이 뒤쳐짐에도 소비자든, 딜러에게 매력적인 포인트가 없었다. 가격은 비쌌고, 딜러들 거래 계약 조건도 까다로웠다. 반대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회사들에선 가격을 인하했고, 딜러들의 편의를 봐주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한 마디로,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본사에선 '다른 나라에선 기존 정책으로 1위를 잘하고 있는데 한국은 왜 못하냐?'는 기조를 몇십년간 유지했으니, 성장이 있을리 만무했다.


위 두번째 요청은 마케팅을 뽑기위한 조건으로는 첫번째보다 연관성은 떨어졌지만, 지사 인사담당자와 지사장의 부탁으로 적게 되었다. 지금까지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근무 후 퇴사한 사람들이 퇴사하는 이유를 모두 '개인적인 사유'로 적었고, 본사에 바라는 점은 '없다'로 적고 나간 상황이라 본사에서 문제점을 모른다며, 나에게 특별히 부탁한 사항이었기에 함께 적었다. 이 역시도 시장에서의 성장과 업무 동기부여면에선 큰 관련이 있었다.


어찌됐든, 나가는 마당이었지만 그 후의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솔직한 마음으로 메일을 써서 보냈다.


메일을 쓴 후로, 퇴사까지 남은 기간동안 매일 출근했다. 출근을 안해도 된다곤 했지만, 다른 직원들은 이런 상황을 모를거라 생각되어 매일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1시간 전 사무실 앞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를 했고, 점심엔 헬스를 하고 항상 가던 1인분 제공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달라진거라면 점심이 지난 후엔 다른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가끔 은행업무나 다른 일들을 봐야할 때는 인사담당자분께 얘길하고 일찍 퇴근하기도 하며, 어느정도는 이 전의 생활 패턴을 맞춰 생활하였다. 가끔 내 자리를 지나가는 분들이 '고생 많았어요.' '잘 선택했어요.' 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이 퇴사기간동안, 튼튼이의 심장 검사를 위해 병원을 갔고, 심장 구멍이 미세하게 조금씩 닫히고 있다는 희망적인 얘기를 들었다. 수술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고, 몇 개월뒤 추적검사를 진행하자는 진단을 받았다. 현재 우리 아기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 몸무게도 덜 나가고 성장이 느리긴 하지만, 이 때를 생각하면 이 역시도 축복이라 생각한다.


이번의 일련의 경험들을 되짚어 보면, 


1. 갑작스런 부당해고

2. 회사와의 싸움

3. 아기의 건강

4. 100곳이 넘는 회사들에서의 이직 여행

5. 이상한 회사에서의 1개월

6. 이사 문제, 차 문제 등등


내가 미처 다 적지 못한 일들까지 안좋은 일들이 모두 약 3개월이란 기간동안 나를 찾아왔다. 이 힘든 시기, 특히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나를 잠깐이라도 놓았다면 지금의 안락함을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싶다. 


하늘이 잿빛으로 보이고,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증오와 우울감이 반복되어 정신과를 간 것도, 부당해고 후 내 연락을 무시하는 회사에 대한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회사 면접을 볼 땐 그 누구보다 여유있게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한 것도, 어떻게 해서든 내 인생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약 10년간 산을 차근차근 올라가던 나를 누군가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린 기분,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고, 다시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던 그 고통의 시간은, 그만큼 치열했고, 절박했으며, 힘들었다. 이 3개월의 고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며 현재의 안락함이 이르게 된 것이 다행이고, 현재의 삶에 매우 감사하다.


이 브런치 글도 죽고싶던 그 기간에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앓던 마음의 병을 글로라도 쏟아내기 위해 시작했던게, 어느덧 42화까지, 한 권의 책 분량이 되었다. 딱총이란 이름도, 그 때 나의 암흑 기간이 딱총을 당기듯 잠시 뒤로 간 것일뿐, 그 고난을 극복하면 앞으로 뛰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에 

'딱총'이란 촌스러운 이름을 짓게 되었다. 


그때의 고난과 역경이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고, 혹독했던 만큼 얻은 교훈들도 있다.


1.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세세하게 계획짜지 말고 방향만 올바르게 갖고 가자.

2.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죽을 것 같을 때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3. 한국 근로자 5명 미만의 외국 회사는 피한다. 

4. 내가 힘들때, 진정 날 위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게된다.

5.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먼 훗날에라도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회사의 첫 출근날이 되었다. 약간은 긴장되고 상기된 마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했고, 직원분들은 날 보곤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마련된 내 자리로 가보니 요청한 노트북과 각종 용품들과 함께 명함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MARKETING MANAGER, 딱총'


드디어 내 삶은 전으로 돌아왔고, 오히려 더 좋아졌다. 밝고 건강한 정신의 사람들과 일하고, 집에선 가정을 돌보며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갖게되었다. 이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앞서 하지 않는다. 다만, 방향을 정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 뿐이다. 


끝. 



*올해 이렇게 모인 내 에세이를 책으로 만들려고 한다. 내가 지칠 때 다시 한번 꺼내보며 현재의 삶이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주위에 힘들어하는 지인에게 나의 얘기를 들려줘 힘을 낼 수 있게,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마지막은 내 글을 읽어준 분들에게 바친다.

"제 글을 읽고 공감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기장처럼 하루하루 눈물을 삼키며 날것의 감정을 토해내 적던 글들을 읽어주시고, 댓글로 용기를 주시고,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이 계셨기에 하루하루 더 힘을 내서 살았고, 보다 더 빠르게 원래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올해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라며, 본인과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35살, 나는 해고 당했다." 책으로 만나기 

https://www.bookk.co.kr/book/view/16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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