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이 Z에게

우울할 때 꼭 시도해볼 3가지 (2)

by Slow Walker

우울증과 혹은 그 비슷한 증상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간관계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전에 말했듯이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가장 큰 이유인데 이 중 당연코 가장 큰 요인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사회는 개개인이라는 조각이 조화롭게 어울러져야 완성된다.

하지만, 개인의 특성이 너무 강하거나 속해있는 그룹이 개인과 맞지 않아 생기는 마찰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사람간의 마찰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에 비해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출나게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들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이 매우 쉽지만, 아마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 상사 혹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더욱 심할 것이다.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에게 직장은 의식주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그만두면 당장 내 의식주를 책임지는 자금이 끊기게 되고, 어떠한 마찰을 일으키고 나가게 된다면 속해 있는 업계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이 일순간이기 때문에 항상 고민하다가 큰 스트레스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누구라도 쉽게 우울증에 걸리기 쉬울것이다.

저번글에서 나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완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라고 말했었다.

그 이유는 운동을 통해 개인의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의미로 말하면 순전히 '나'를 위한 행동이다.


하지만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단순히 운동으로만 치료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왜냐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사회에 속해 있는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라는 개념에서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사람 만나기"이다.



내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 혹은 우울증은 결국 사람으로 풀어야 한다."


왜 인간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인데 사람을 만나서 풀어야할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건 바로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고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조금 철학적으로 다가가 보면 그 이해가 좀 더 빠를 수 있을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는 유명한 철학자들이 많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 다양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가진 생각에 근거를 뒷받침에 지금의 철학이라는 문학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개념과 다른 상대방과 토론하고 논쟁하여 그 개념의 완성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시대가 몇백년 몇천년이 흘러도 이러한 토론과 논쟁의 문화는 계속되어 이어온다. 이제는 단순히 철학의 개념이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의 주장을 납득시키려고 하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즉, 인간은 본인들의 주장과 생각을 말하고 싶어하고 자신과 뜻이 같은 사람들과 모이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케인즈 학파, 아담스미스 학파 부터 시작해서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이들의 개념은 또 다른 주장을 만나면서 생각이 변하고 그렇게 인류는 진화해간다.


따라서 개인이 어떤 공동체에서 맞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를 우울해하고 자꾸 어둠의 어딘가에서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은 생각이 잘못됬다는 것이다. 왜나면 그건 아직 나랑 맞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속해있는 사회를 좀 더 넓혀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게 어떤 취미 공동체일 수도 있고, 회사 내 동아리 일수도 있는 것이고 좀 더 나아가서는 종교적 공동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상적인 종교집단 혹은 독서 모임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당, 교회, 절 등은 기본적으로 오는 사람들을 막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달라도 받아주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아무도 잘 들어주지 않을 수 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사회에서 좀 더 잘될 수 있게 기도도 해주고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 나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을 제공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과 동시에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에게 맞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독서 토론모임에서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때 결국 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게된다. 책의 내용과 내 경험을 엮어서 말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당신의 의견을 듣고 공감해줄 수도 있지만 반박의 의견을 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의 사람들은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의견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다른 혹은 같은 의견을 고려해보면서 나의 행동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만남이 반복되다보면 나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점차 쌓이게 되고 여태까지 내가 했던 행동들이 사회에서 합리적이었던 것인지에 대한 결과도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공동체(예를 들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나'와 통하는 '우리'의 공동체에서 풀수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말하고 위로와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힘들다고 방안에서 있거나 혼자서 끙끙거리지 않기를 바란다. 힘들더라도 밖으로 나와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우리'의 공동체를 찾아가다보면 언젠가 좀 더 밝아지고 있는 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Although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it is also full of people overcoming it."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또한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 헬런 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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