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안전한 교실을 위한 무기 나는 이렇게 씁니다.
지성이는 자석을 좋아한다. 알록달록한 자석이면 더 좋다. 같은 색깔끼리 모아두고 탁탁 붙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자석을 책상에 두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쉬는 시간이야 상관없지만 수업 시간에는 여간 신경 쓰여서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수업하는 내 목소리보다 책상 내려치는 소리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지성이를 데리고 가 놀이공간에 자석을 두고 오게 한다. 고맙게도 이젠 내가 손만 내밀어도 알아서 자석을 샌드위치 쌓듯 모아 따라와 주는 지성이, 이렇게 되기까지 생각보다 험난한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 수가 틀린다면 또 ‘그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던 날, 눈 맞춤도 제대로 되지 않는 지성이가 수업 시작을 알리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일 리 없었다. 역시나 가지고 놀던 자석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커 반 아이들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었고 작심한 나는 지성이 책상에 있는 자석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러자 이제 막 개봉한 슬라임이 흘러내리듯 지성이는 교실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예고도 없는 장난감 강탈에 아주 서운했겠지’ 달래려 지성이를 일으키려 하자 그 일이 일어났다.
“쿵쿵쿵”
지성이가 뒤통수를 교실 바닥에 찧기 시작했다. 시멘트에 못 박히는 소리처럼 둔탁한 소리는 나와 실무원님을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일단 푹신한 곳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교실 매트에 지성이를 눕혔다. 그러자 지성이는 다시 단단한 교실 바닥을 일부러 찾아와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딪쳤다.
‘개학 첫날부터 뒤통수에 멍이라도 들면 ….’
사태가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 놀이공간에서 쉬고 있던 자석 장난감들을 책상 위에 복귀시켰다. 하지만 발작처럼 이어지는 분노 속에서 지성이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원래보다 더 많은 자석 장난감을 책상에 올려두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지성이의 뒤통수 떡메질은 간신히 멈춰질 수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웃는 지성이와 넋을 잃고 서 있는 나와 실무원님을 보며 솔직한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가 졌어.”
패했다. 협상에서 윈-윈 이란 주고받음이 있어야 하는데 지성이의 격렬한 저항에 나와 실무원님은 제대로 손 한번 쓰지 못했다. 장난감도 회수한 것에 비해 더 많은 것을 갖다 바친 꼴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완패였다. 더 창피했던 것은 이제 막 신규 채용되어 학교라는 공간에 근무하게 된 특수교육실무원님이 보기에 ‘특수교사 별거 없네’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물론 그러실 분은 아니다).
협상의 기술이 필요했다. 늘 패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대책, 그리고 나와 지성이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윈-윈 전략 말이다. 해결책은 의외의 물건에서 시작되었다. 그날도 뭐가 기분이 나빴던지 스위치기 눌려버린 지성이가 둔탁한 떡메질하는 중이었다.
“툭”
지성이를 일으키기 위해 몸을 숙이던 중 주머니에서 키즈 비타민이 떨어졌다. 전날 아들 녀석 비염 때문에, 병원에 들렀을 때 간호사님이 챙겨주신 뽀로로 비타민. 그 순간 지성이의 울음은 뚝! 끓기고 시선은 고정되었으며 눈동자는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설마!”
어느샌가 일어난 지성이는 한 손을 내밀며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하는 말인 “주주” 소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렇다. 지성이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발작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조절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럼,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친 이유는?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엎드려 누우면 바닥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지성이가 똑바로 바닥에 눕는 순간 나와 실무원님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관심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딱딱한 바닥에 뒤통수까지 내리치면? 풍요로운 나만의 장난감 세상을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고진감래(苦盡甘來) 달달한 열매를 위해 뒤통수가 겪을 어느 정도의 고통은 지성이에게 감수할 만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와 실무원님은 아마도 지성이에게 손쉬운 먹잇감이었겠지.
그날 오후 지성이 보호자님께 뽀로로 비타민이 일으킨 기적에 관해 설명해 드린 후 지성이 지도 방법에 대해 일관성 있는 규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공간 전이와 투명 인간 기법 그리고 또 다른 버전의 고진감래
일단 지성이가 바닥에 누우려 하면 지성이가 요구하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 제3의 공간으로 간다. 지성이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공간 또는 물건에서 격리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공간이 푹신한 바닥 재질로 되어 있으며 다칠만한 물건이 없는 곳이어야 하고 철저하게 나와 지성이만 이동한다.
지성이가 거부한다면? 내가 왜 헬스장에서 궁시렁거리면서 진절머리 나는 아령을 들었겠는가. 둘러메고 간다. 조금 무겁더라도 단 한쪽 팔로 아이를 들고 이동하는 포포먼스를 보여주는 순간 힘의 우위는 결정 나기 마련이다.
공간의 변화를 준 이후에는 철저한 무시다. 지성이의 울음과 몸부림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창밖의 광경을 지긋이 바라본다. 마치 우리 둘은 다른 세계에 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분노와 고집을 과시하고자 하는 지성이는 더 격렬하게 악다구니를 쓰고 손으로 뺨을 두들기지만 나는 그저 지성이가 스스로 진정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기대하며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을 견뎌내면 거짓말처럼 울음은 사그라들고 내 손 사이로 지성이의 자그만 손이 스르르 들어온다.
“에구 우리 애기, 갈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면 교실로 돌아갈 준비는 이제 끝! 지성이 눈에 비치는 왠지 모를 아쉬움은 잠시 접어 두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간 교실에서 지성이의 과제를 최소한으로 줄여준다. 다른 친구들이 수행할 과제의 1/5 정도만 제시하고 끝마쳤을 때를 놓치지 않고 원하는 장난감이든 휴식 시간이든 아낌없는 칭찬과 함께 제공한다. 참고 해내 준 지성이를 격려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교실에 통제권은 나한테 있다구! 그러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시키는 일부터 해야 할걸?”
쓰고 보니 마치 폭력 영화 대사 한 구절을 가져온 듯 고압적이고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잊지 않는다. 지성이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려 할 때마다 우선순위로 안전부터 생각한다. 작은 과제라도 끝낼 때마다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고 눈을 맞추며 열렬히 환호해 준다. 그리고 말해준다. 이 교실이 지성이에게 가장 즐겁고 안전한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선생님도 같은 마음으로 너와 공부하고 싶다고 말이다. 지극히 당연하기만 한 그 작은 소망을 오늘도 두 눈에 꾹꾹 눌러 담아 둔다. 그리고 가끔 스치듯 눈이 마주칠 때면 속삭이듯 그 마음을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