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보다 더 역동적이었던 공연 관람기
[문화예술부 안내] 뮤지컬 관람 체험학습을 희망하는 학급은 기한 내 신청하시기를 바랍니다. 기한은….
“실무원님 우리 반 이거 신청할까요?”
“괜찮을 것 같아요. 강당에서 학교폭력 예방 뮤지컬 볼 때도 아이들 얌전히 앉아 보던데요.”
“공연장이 국립중앙박물관이네요. 간만에 서울 냄새 좀 맡고 오겠어요!”
실무원님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참가 의사를 밝힌 나는 아이들과 첫 외부 체험학습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행복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즐겁기만 할 줄 알았던 체험학습이 얼마나 많은 변수와 굴곡의 순간이 될지 말이다.
체험학습일 아침.
복도를 지나며 마주한 옆 반 선생님 목에는 예쁜 이름표가 걸려있었고, 손에도 학생 명찰이 주렁주렁 들려있었다. 나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명찰은 교무실에 가면 받을 수 있어요?”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메시지 못 보셨나 보다! 명찰은 각 학급에서 준비하라고 했어요.”
“명찰은 각 학급에서 준비하라고 했어요.”
“명찰은 각 학급에서 준비하라고 했어요.”
“명찰은 각 학급에서 준비하라고 했어요.”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름 꼼꼼하게 체험학습 공지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을 놓치다니! 하긴, 자기 의사 표현이 어려운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외부 체험학습을 가면서 안전을 위해 이름표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생각지도 못한 것 자체가 나의 준비성 부족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10분가량, 실무원님께 장거리 여행을 대비해 아이들의 화장실 용무를 부탁드린 나는 곧장 컴퓨터를 켰다. 별다른 디자인 없는 흰색 배경에 이름과 학교명 그리고 교사 연락처만 간략히 기록해 출력한 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명찰을 제작해 아이들 목에 걸어주고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안 다른 반 아이들의 명찰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고 나무가 울창하거나 꽃이 만발했다. 우리 반 아이들 명찰만 허허벌판이었다.
“버스 안이니까 명찰은 벗어두자!”
멋쩍었던 나는 아이들을 위하는 척 명찰을 걷어 내 가방 안에 꼭꼭 넣어두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명찰을 완성한 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했고 버스는 출입문을 닫았다. ‘그래도 무사히 출발하는구나.’생각하던 그때! 내 옆에 앉는 동길(가명)이의 발이 내 시선을 빼앗아 갔다. 아뿔싸! 나는 안전띠를 풀고 거의 질주하듯 출입문 쪽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기사님 잠시만요!”
“무슨 일 있으세요?”
“1분만요! 금방 다녀올게요.”
나의 절박한 눈빛에 기사님은 출입문을 열어주었고 전력 질주해 교실에 도착한 나는 동길이 신발장을 열어젖혔다. “있다!” 동길이 신발을 집어 든 나는 다시 버스로 뛰었다.
아이들은 교실에 도착하면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는 연습을 반복해 왔다. 그래서였을까. 체험학습을 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동길이는 출발 전 잠시 머문 교실에서 평소처럼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곧이어 내 손에 이끌려 나온 동길이는 결국 실내화를 신은 채 버스에 오르고야 말았다. 물론 오늘은 신발을 벗지 말라고 안내하긴 했지만, 명찰을 만드느라 분주했던 나는 끝내 신발까지 세심하게 챙기지 못하고 만 것이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버스에 올라타자, 동료 선생님들은 “1분 12초! 12초 오바됐어!”라며 놀리듯 무사 귀환을 축하해 주었다. 대꾸할 기운도 없던 나는 동길이 발에서 실내화를 벗긴 뒤 얼룩말 무늬 크록스를 신겨주었고 비로소 우리의 여정은 2분 늦은 9시 2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없기를….’
제대로 된 여정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추억을 만들고 싶다던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출근하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처럼 얼른 학교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툭툭 새어 나왔다.
다행히도 공연장이 위치한 서울까지 멀미 때문에 고생하거나. 급작스레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화장실이 급하다고 호소하는 아이는 없었다. 가끔 지루함에 내 손을 가지고 장난치는 동길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일 외에 특별히 신경 쓸 일 없던 우리는 무사히 공연장 앞 공원에 당도했다.
“위이잉” 버스 앞문이 열렸고, 아이들과 나는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산다는 서울 땅에 발을 내디뎠다. 초여름 날씨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지 손바닥은 흘러나온 땀으로 미끈거렸다.
“선생님 잘 보고 절대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요!”
꺼내기 싫었던 명찰을 아이들 목에 걸어주며 재차 당부한 나는 평소보다 느린 걸음걸이로 아이들을 안내하며 공연장으로 향했다. 가로등마다 익숙한 포스터들이 어서 오라는 듯 펄럭거렸고 그 환대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공연장 4F」라는 안내판과 함께 이제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며 솟아오르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아이들 모두 타본 경험이 있는지 망설임 없이 발을 옮겼고 웅웅거리는 소리에 맞춰 우리는 위로 또 위로 올라 4층에 도착했다. 사뿐히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린 나는 공연 관람 전 사전교육을 위해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 화장실 한번 들렀다가 공연장에…. 헛!”
맙소사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승환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타는 에스컬레이터와 헤어짐이 아쉬웠던지 승환이는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었다. 물론 그 에스컬레이터가 향하는 방향은 아래쪽이었다.
“실무원님 아이들 좀!”
오늘만 두 번째 전력 질주다. 내가 달려오는 것을 눈치챈 승환이는 이 즐거운 시간이 머지않아 끝날 것임을 직감했나 보다. 마치 걸음마를 막 배운 아이처럼 무릎을 굽혔다 폈다가 하며 춤인지 도발인지 모를 최후의 몸부림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엉덩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앞서가던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외치며 빠르게 내려가기 바빴다. 다행히 4층에서 3층으로 내려가는 사이에서 간신히 승환이를 잡을 수 있었고 아련한 눈빛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바라보는 승환이를 질질 끌고서야 드디어 공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자, 이제 공연만 잘 보면 끝이다!’
입장이 늦었는지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공연장 내부는 깜깜한 탓에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다행히 하나둘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고. 학교에서 보았던 뮤지컬과 다른 압도적인 무대 크기와 배우들의 성량에 감탄하며 우리는 서서히 뮤지컬에 빠져들고 있었다. 단 한 명! 동길이만 빼고 말이다.
공연장에 들어설 때부터 몸에 힘을 주며 저항하던 동길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가자며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아끌었다. 동길이가 공연에 집중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챙겨온 색종이와 신문지(앞서 말했듯 동길이는 종이를 찢는 것을 좋아한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났고 음악 없이 배우들이 목소리만으로 연기할 때면 동길이는 불편할 때 내는 특유의 “에헤헤헤” 소리를 연발해 옆 관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시선 때문에 아픔이 느껴진다면 믿겨 질까? 사실 에스컬레이터에서 승환이를 쫓아갈 때부터 그 시선의 따가움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동길이를 바라보는 듯하면서 마치 나를 향하는 듯한 그 눈빛은 따가움을 넘어 통증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 몸 어딘가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아팠다.
결국 실무원님께 눈빛으로 작전상 후퇴임을 알리며 다른 아이들을 부탁한 나는 입장한 지 10분 만에 동길이를 데리고 공연장 밖으로 나왔다. 텅 빈 로비에 서자 동길이는 이리로 저리로 나를 끌고 다니며 공연장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운동하는 셈 치고 동길이가 이끄는 대로 다녔지만,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은 역시나 편하지 않았다. 정처 없는 발걸음 속에 시간은 뉘엿뉘엿 흘러 공연은 막을 내렸고 체험학습 중 가장 걱정이 되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려했듯 낯선 식사 장소와 색다른 메뉴에 거부감이 들었는지 두 명의 아이가 밥 먹기를 거부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종종 그런 경우가 있는 친구들이기에 식사 치트키인 양반김을 챙겨 둔 참이었다. 아이들 밥그릇에, 김에 싼 밥을 올려주면서 나도 틈틈이 식사할 수 있었고 마냥 편안한 점심은 아니었지만 이제 곧 학교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 버스로 이동할게요!”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들른 아이들과 버스로 향했다. 오늘 하루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있음에 안도하며 걷던 중 반대쪽에서 공연 관람을 위해 이쪽으로 오는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걷는 모습과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특수학교구나.’
우리 반 아이들보다 덩치는 크지만 걸음 속도는 훨씬 더딘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 찬찬히 기다려 주며 걸어가고 계셨다. 교차하는 순간 우연히 그 선생님과 눈빛을 교환하게 되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서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힘드셨지요? 돌아가는 길 안전하게 가시길 바랄게요.’
‘선생님도요. 부디 무탈한 공연 관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지나쳐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짧은 눈빛 속에 오간 묵묵한 응원과 이해는 말보다 더 깊고 따뜻했다. 버스에 올라 아이들의 벨트 착용 여부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느린 걸음을 옮기는 저편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보였다.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보다 느리지만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었다.
아마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었다. 오늘 나의 여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선생님도 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준비성 부족이 탄로 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이 세상을 더 넓게 경험하고, 웃음 짓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분명히 같기 때문이다. 그 마음 하나로 나도, 그 선생님도 오늘을 버텨내고, 또 다음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