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지도라는 이름의 폭탄 돌리기 앞에서
"위이잉"
일과가 끝나고 방과 후 수업이 막 시작하는 두 시경,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리 학교 중등 선생님이셨다.
'무슨 일이지?'
그날따라 다급하게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휴대전화 초록색 버튼에 손을 올렸다.
"선생님, 7교시 분리지도 맞으시죠?"
"제가요?"
"예전에 7교시 가능하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현관으로! 빨리요!"
끊긴 전화에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가면서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했다.
우리 아이들은 종종 돌발행동 또는 도전행동을 보여 담임교사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학교에서는 분리지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당 시간에 수업이 없는 선생님들이 분리지도를 맡아주시는데, 학기 초 담당 선생님이 간곡히 요청하기에 '날 부를 일이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회신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나를 부르는 일이 생겨버렸다.
현관에 도착하니 학생 한 명이 대자로 누워있고 주위로 서너 명의 선생님이 팔짱을 낀 채 서 계셨다.
"이 친구예요?"
전화를 거셨던 중등 선생님께서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하신다. 그리고는 누워있는 학생에게 다시 말을 건다.
"00야, 안 일어날 거야?"
"..."
미동도 없는 녀석, 몇 차례 사건이 있었던 녀석이라 나도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체구는 나보다 다부지고 체중계에 오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람했다.
"이거 끼세요."
이전 시간에 분리지도를 담당했던 선생님께서 끈 달린 무언가를 건네신다.
"이게 뭐죠?"
"바디캠이요. 혹시 모르니 착용하세요. 저도 방금 두 대 맞았거든요."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며 왔는데, 바디캠을 몸에 둘러보니,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방탄조끼를 두르는 듯 긴장된다. 그사이 수업 시작종이 울렸고 모여있던 선생님들도 각자 수업을 위해 자리를 떴다. 남은 것은 나와 그 녀석, 오롯이 둘 뿐이다.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제발 지금처럼 누워만 있어라'
내 간절한 기도가 닿지 못했는지 녀석은 몸을 일으켰다. 탐색하듯 나를 위아래로 쓸어보던 녀석이 손을 들어 바디캠을 가리킨다.
"그거 모예요?"
"이거? 카메라지."
"카메라? (그)거 꺼요."
"안돼. 너랑 같이 있는 동안 낄 거야."
"..."
한참을 심각하게 나를 보던 녀석, 갑자기 빙그레 웃더니 벌떡 일어난다. 뒷걸음질 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기세에서 밀리고 싶지 않아 제자리에 서 있는다. 성큼 다가선 녀석이 카메라 쪽으로 손을 내민다.
"그만"
딱 잘라내는 한마디와 함께 손을 밀어낸다. 잠깐의 손 씨름에서 녀석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분명한 두 가지가 느껴진다. 첫째, 예상했던 것보다 손이 묵직하다. 군데군데 굳은살도 잡혀있는지 돌덩어리를 만지는 것 같다. 두 번째는 녀석도 내가 어느 정도 완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눈치다. 순순히 밀려나지 않고 밀어내는 힘을 느끼며 팔을 거둬들이는 게 분명했다.
손만 내밀면 닿을 거리, 씩씩거리는 숨소리마저 또렷하게 들리는 침묵 속에서 다시 서로를 응시한다. 괜찮은 척, 여유 있는 척 최대한 미소를 띠며 녀석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휙 돌린 녀석 성큼성큼 어디론가 향한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싶어 천천히 뒤따르는데 녀석이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호출한다.
"덜컹"
문이 열리자 녀석은 주저 없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갔고,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녀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기에 하는 수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3층, 2층, 지하 1층 그리고 다시 1층, 녀석은 여러 층을 돌아다니며 문이 열리는 잠깐의 시간 동안 뭐 재밌는 일은 없는지 살피는 듯 밖을 내다봤고, 적막감 넘치는 복도에 실망하며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르기를 반복했다. 나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녀석이 계속 밖에만 관심 가지기를 내 쪽으로는 시선 두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다시 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녀석이 갑자기 확신에 찬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뭐지?'
녀석이 도착한 곳은 자기 반 교실, 의자에 앉은 녀석은 다시 나를 보더니 한 손을 들며 소리친다.
"가요!"
"뭐라고?"
"가!"
고개를 휙 돌리는 녀석, 삐친 듯 새침하면서도 미련 없어 하는 한 마디에 헛웃음이 나온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같은 반 친구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오신다.
"많이 힘드셨죠?"
"아뇨,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만 했어요."
별거 아니었다는 듯 시치미를 뗀다. 바디캠을 벗어 담임선생님께 건네는데 받아드는 손목에 감긴 붕대가 보인다. 한 달 전 녀석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던 선생님, 병원에서 돌아오시긴 했지만, 팔목만큼은 아직도 입원 중인가보다.
"괜찮아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멋쩍게 웃는 선생님, 옆에 더 있어 주고 싶지만, 곧 우리 반 아이들 하교 시간도 다가오기에 어쩔 수 없이 교실을 나섰다. 내가 나가더라도 더는 아무 일도 없기를, 오늘 그 선생님의 퇴근길이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다음날..
교무실로 가던 중 또 녀석이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분리지도 교대를 하셨는지 여자 선생님이 내 쪽으로 걸어오신다. 안쓰러움에 "별일 없으셨어요?" 묻자 "너무 공포스러웠어요." 하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선생님
'저도요, 저도 그랬어요.'
멀어져가는 선생님을 보며 조용히 읊조린다.
이제 그 공포를 누군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다음 시간의 누군가에게 전달되겠지. 폭탄 돌리기 같은 이 지리한 상황이 언제쯤 마침표에 닿을 수 있을지. 또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학산초 선생님이 떠나간 1주기에 남모를 한숨을 복도 위에서 내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