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덮친 학교에서 떠오른 상념
성과보고회, 우수사례 발표회, 교육 박람회..
연말이 되니 한 해동안의 실적을 공유하는 자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마련된다. 외딴 특수학교에서 다양한 선생님들과 교류하기 어렵다 보니 혹시 교육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어 부러 들러본다.
'어, 여기도?'
어제도 주요 발표 주제가 AI활용 교육이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미지를 생성하고 메타버스를 체험하며 느낌과 감정을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사용하는 플랫폼이나 애플리케이션만 다를 뿐 생성형 인공지능이 전면에 나서고 있음에는 다름이 없다.
어느덧 세상은 '오늘 뭐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까지 AI에게 묻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설계에서부터 실제 수업과 평가에 이르기까지도 인공지능의 활용가능성은 끝이 없었고, 강사들은 입을 모아 AI의 우수성과 수업활용 가능성에 대해 역설했다. 감동적이었다. 남이 시켜서, 실적을 내고 싶어서 하는 사례발표가 아닌 정말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해 AI시스템을 연구하고 수업에 적용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이 말이다.
다만 그 열정적인 강의를 통해 내 안에서 움트길 바랐던 것은 혁신과 도전정신이었을 텐데, 그보다 먼저 들었던 마음은 아쉽게도 두려운 마음이다. '수업에서 AI를 쓰지 못하면 구닥다리, 뒤쳐지는 교육을 하는 교사로 치부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 현기증 같은 두려움 말이다.
아득해지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강의는 흘러 흘러 마무리되었고 이런저런 염려와 헛헛한 마음으로 강의실을 나선다.
"어!"
이 기분 처음이 아니다.
그때도 똑같았다.
밀린 숙제 같은 부채감, 근심, 덩달아 깊어지는 한숨의 깊이까지도. 문득 수 많았던 그간의 연수들이 떠오른다. STEAM교육, 스마트교육, 배움중심교육, 코딩교육 등등..
녀석들은 늘 초대하지도 않았는데도 불쑥 나타나 교실을 흔들어댔고 각종 연수와 공문들로 교사들의 멱살을 짓누르며 끌고 갔다. 그 광폭함속에 현기증에 시달리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면 거칠었던 불청객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유행처럼 찾아온 각종 자료와 기자재들만 우리 딸 방의 옷처럼 널부려져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결국 역할을 찾지 못한 채 학교창고 어딘가에 차곡차곡 적치되고 빛도 보지 못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폐기될 날만을 기다리게 된다.
AI.. 녀석은 또 몇 년이나 가게 될지..
물론 AI를 활용한 교육이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동료로서 또 수업에 활용되는 이미지를 그려주는 작가로서 AI를 기꺼이 나의 교실로 초청하고 있고 그 탁월함에 감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텐데, 박람회 부스 대부분을 AI가 차지하고 있고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다. 내가 필요하고 원해서 찾아 듣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니까 대세가 그러하니까 배워야 한다고 말하며 선택지를 줄여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일부 AI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교사들만 우대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과연 그러한 자세를 보이는 분들은 진정 교사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갖고 있는지 싶다. 가끔은 교사의 전문성을 AI사용능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따르지 못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교사들을 하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교사를 국가 정책 운영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늘 가슴 한구석을 찌르는 사실 한 가지 '우리 아이들이 이게 될까?'
AI서비스에 접속하기 위한 정보화기기 사용 능력도 일반학생들에 비해 뒤쳐지는 우리 아이들이 사회변화 속에서 또 한 걸음 아니 수걸음 뒤쳐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부채감만 쌓여가는 요즘이다.
AI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용어가 있다.
HITL: Human-In-The-Loop(인공지능 시스템의 운영에 사람이 직접 참여하여 의사결정, 감독, 피드백 등을 제공하는 시스템 또는 프로세스를 의미함)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그 시스템 구동의 감독, 평가, 보완, 개선에 있어서는 반드시 인간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발 빠르게 움직이는 AI라는 전차를 모는 기수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HITL의 의미에 대한 교육자로서 나의 해석은 이러하다. 교사에게 또 아이들에게도 AI교육은 단순히 AI사이트를 소개하고 기능을 안내하는 수준에서 마쳐져서는 안 된다. 녀석이 만들어내는 산출물에 감탄하고 명령 프롬프트에 돈, 성공에 대한 키워드를 입력하는데 급급해서는 더더욱 아니 된다.
그보다는 AI세상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이는 없는지 이들과 함께 AI의 유용성을 느끼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물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존중과 나눔의 정신이 입력될 때 AI 또한 경쟁과 약육강식이 아닌 연대와 협력의 방향의 학습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문득 시골에 계신 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파도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은 결코 우리 교실에 있는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스마트기기와 디지털 사회가 특정인들에게만 웃음을 안기지 않기를 시골 농부의 거친 손을 쉬게 하고 장애학생들의 사회진출을 돕게 하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