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에서 00부장하는 강선생 이야기(2)

이 현기증이 취기 때문만은 아닐 테지요

by 스페셜K

"생활 부장을 맡아줄 수 있으신가요?"

"네?"


뜻밖의 제안이 지끈거리던 숙취가 잠시 밀려났고 영준은 오늘 하루 중 가장 크게 눈을 떴다. 동시에 벌어진 입에서 뱀 같은 말이라도 나올까 두려웠던 걸까. 교감선생님이 잽싸게 말할 기회를 낚아챈다.


"아무래도 남자 선생님이 무게감을 갖고 생활지도를 하는 것도 좋겠고 또 강부장님이 워낙 잘하니까.."


이미 정해지기라도 한 듯 평교사인 영준에게 부장 직위부터 달아주는 노련함이란. 영준이 하려던 말에 웃음이 코팅되어 나온다.


"하지만 올해 그 업무는 중등 파트에서 맡기로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알지 알지. 하지만 강부장님이 하겠다고 나서 주기만 한다면 초등 중등 그게 뭐 대수겠어요?"

"그리고 저는 올해 다른 업무를 희망했는데요. 업무 희망서에도.."

"알아요."


교감선생님이 손을 들어 급히 말을 끊는다. 단호한 한마디에 영준은 목 안에서 출동 준비를 하던 말들에게 퇴각을 지시한다. 그 사이 교감선생님도 들었던 손을 모아 팔짱을 끼고 허리를 쭉 폈다. 그날따라 회색 정장을 입은 교감선생님의 모습이 일순간 담벼락처럼 느껴진다. 그 단단한 담벼락이 점점 숙여지며 영준 쪽으로 기울었다.


"한데 아무도 그 업무를 희망하지 않고 있어서요. 우리도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리는 거예요."

"흠.."


말을 더 길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영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결국 할 것인지 말 것인지 yes or no만 이야기하면 될 뿐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꿀꺽"


할 일 없어진 목젖을 울리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무거운 침묵은 어느새 손바닥을 펴고 영준의 등을 두드리며 속삭였다.


"어서 토해내! 예 하겠습니다. 그 말을 토해내란 말이야."


항복선언 같은 긴 호흡이 나오려던 찰나 교장선생님이 나긋하게 말을 꺼내신다.


"오늘 꼭 답변을 할 필요는.."

"하겠습니다."

"네?


술기운이 남았던 걸까? 대답에 묘한 객기가 넘친다.


"하겠습니다. 어차피 저 아니면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하!"


반색하던 교장선생님이 옆에 앉은 교감선생님께 악수를 청했다. 드라마에서 큰 계약을 따내고 기뻐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고작 내년 업무를 맡을 부장단의 한 조각을 맞췄을 뿐일 텐데 이게 악수까지 할 일인가 싶어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개를 숙인다. 교장선생님이 타준 찻잔에 작은 파문이 인다.


코웃음을 내쉬며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그제야 넘긴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하며 튕겨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하지만 이미 승낙해 버린 마당에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왠지 폼이 안서는 것 같아 관두기로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오면서 영준은 왠지 오늘 저녁 맥주 한 캔을 더 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소주도 조금 더 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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