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이 특기인 우리 반 승환이
승환(가명)이는 타고난 오지라퍼다. 호기심이나 간섭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고 사람들을 챙기려는 마음이 몸에 밴 아이다.
승환이 옆자리에 앉는 친구는 수업 시간에 종종 자리를 떠나 교실을 배회하곤 하는데 내가 그 친구를 데려와 자리에 앉히려 하면, 승환이는 망설임 없이 작은 몸을 옆으로 기울인다. 그러곤 손으로 친구의 의자를 살짝 빼주고 의자 바닥을 ‘탁탁’ 두드린다. 말하지 않지만, 그 손짓에 담긴 마음은 분명하다.
“수업 시간이잖아. 여기 앉자!”
또 의사소통이 어려운 친구에게 내가 질문을 하고 O/X 선택판을 보여주며 답변을 유도하고 있을 때면, 승환이는 어김없이 불쑥 나타난다. 그러고는 망설임도 없이 O나 X 중 한 곳을 툭툭 건드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마치 “답은 이거야!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듯, 세상 당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게 정답이 아닐 때가 더 많다는 것이긴 하다.)
처음에는 승환이의 모습이 마냥 재미있게만 보였다. 어수선한 수업 분위기를 정돈하듯 친구를 자리로 안내하고 긍정과 부정(O/X)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친구를 위해 깜짝 등장해 답을 콕 집어주는 모습은 교실의 평화를 지키는 작은 슈퍼맨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승환이의 모습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던 날도 있었다.
사건은 우리 반 동길(가명)이가 잠이 덜 깨어 등교한 날, 바로 그날에 발생했다. 동길(가명)이는 종종 새벽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해 몽롱한 상태로 학교에 오는 일이 있다. 그런 날의 동길이는 평소보다 매우 예민해져서, 조금만 불편한 기분이 들어도 꼬집거나 무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 급식 시간에 짜증을 내며 밥을 먹지 않거나, 용변을 참다가 수업 중 갑자기 교실을 뛰쳐나가 화장실로 달려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말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아지는 날이다.
그날 동길이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화장실에 다녀오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급식실에서 급하게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뛰어다니기라도 한다면 친구들 식사에 방해됨은 물론이고 뜨거운 국물이 오가는 급식실 특성상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상태의 동길이와 함께하는 나도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을 터였다.
나는 A4용지 한 가운데 변기 사진이 크게 박혀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O/X 기호가 적힌 선택판을 동길이에게 들이밀었다.
“동길아, 화장실 갈까?”
“...”
선택판에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고개를 돌리려는 동길이의 머리를 고정해 가며 O/X 선택판을 더 바짝 가져다 댔다. 하지만 관심 없다는 듯 몸을 한쪽으로 기울인 채 동길이는 특유의 “우우우”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런 동길이를 억지로 끌고 화장실에 데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길이가 진짜 소변이 급하지 않다면 내 다그침이 안 그래도 예민한 동길이를 폭발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동안 O/X 선택판을 통해 배변 의사 표현을 꾸준히 연습했는데 동길이의 의사 표현과 상관없이 무작정 화장실로 데려간다면 그동안 소통판을 이용해 의사 표현을 연습했던 노력이 무의미해질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화장실 한번 들르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억지로라도 O 표시를 가리키게 해볼까?’라고 생각하던 그때! 불쑥 손가락 하나가 나와 동길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렇다, 승환이었다. 승환이는 몸을 흔드는 동길이에게 보물 지도의 보물섬 위치라도 알려준다는 듯 의사소통판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인 X 기호 한 가운데였다. 어찌나 자신감 넘치게 가리키던지 만약 승환이 손가락이 칼이었다면 X 기호 한 가운데를 뚫었을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웃어넘길 수 있었던 승환이의 행동이었지만 그날따라 참기 어려웠다. 결국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승환아! 지금은 동길이한테 물어보는 거야! 절로 가!”
움찔하던 승환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승환이가 찍었던 X 기호 한가운데에 이름 모를 흔적도 민망하다는 듯 살그머니 사라졌다. 함부로 감정을 드러낸 벌을 받는 것일까? 그 순간, 동길이의 “우우” 소리가 커지더니 이젠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꼬아대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옆 반 선생님이 “쟤 작년 별명이 새우였어요.”라고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정도로 몸을 새우처럼 휘면서 소리 지르는 모습에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오늘 점심은 틀렸구나’
아이가 불편함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밥 생각부터 하는 나란 남자, 참 한결같은 남자! 아무튼 실무원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께 우리 반 아이들의 점심 식사를 맡긴 나는 혼자 남아 울부짖는 동길이를 한참이나 토닥여 주며 진정시켰다. 그러자 점점 잦아든 “우우우” 소리와 함께 동길이는 거짓말처럼 잠이 들었다.
‘그래, 그냥 졸렸던 거구나’
동길이를 교실 안 매트에 눕히자, 교실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을 깨고 싶지 않았던 나도 동길이 옆에 살포시 눕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올라왔다. 신음 같은 한숨이 새어 나올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동길이의 잠을 방해할까 걱정되어 천천히 코로 내쉬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오늘 점심으로 나올 돼지고기 수육이 아른거렸다. 그 황홀한 모습을 바라보니 곧 육즙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멀리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방금까지 동길이에게 들이밀었던 O/X 선택판이 나처럼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변기 그림과 긍정의 O 부정의 X 그중 X 기호를 바라보다가 선택판을 가리키던 승환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승환이가 맞았네! 어휴’
실제 동길이의 마음을 알았든 몰랐든 간에 승환이는 그저 돕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상황이 급하다는 핑계로 그 따뜻한 마음을 무시하고 성질부터 부린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얼마나 부끄러웠냐면 몇 초 동안 오늘 급식의 하이라이트인 수육의 존재를 잊을 만큼이었다.
“선생님 얼른 다녀오세요!”
밥도 못 먹을까 봐 걱정되셨는지 실무원 선생님은 먼저 식사를 마친 아이들과 교실로 들어오셨다. 단순한 나는 실무원님의 등장과 함께 풍겨오는 수육 냄새에 다시 식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승환이는요?”
“아직 다 안 먹었어요. 부장 선생님이 옆에 계셔주기로 했어요.”
부장 선생님의 황금 같은 식사 후 휴식 시간을 빼앗는 일은 절대 안 된다는 강력한 사명감을 가지고 급식실로 질주했다. 그곳에는 식사를 마친 부장 선생님이 팔짱을 낀 채 국그릇을 뚫어낼 듯 긁어내는 승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 마치셨죠? 제가 승환이랑 함께 있을 테니 쉬세요.”
“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옆 사람이 일어나는 낌새를 느꼈는지 승환이는 숟가락질을 멈춘 채 일어서는 부장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부장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삐쳐있으려나?“
승환이 옆자리에 앉을지 앞자리에 앉을지 고민하며 걸음을 옮기던 그때 승환이가 옆자리 의자를 쭉 뺐다 그런다음 마치 앉으라는 듯 의자 바닥을 퉁퉁 쳐주었다.
”여기 앉으라고?“
대답 대신 승환이는 다시 의자 바닥을 퉁퉁 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승환이 옆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드디어 고대하던 첫술을 떴다. 따뜻한 국물이 얼어붙은 마음과 비어버린 오장육부를 채우자 비로소 하고 싶었던 말이 기운을 차리며 올라왔다.
”승환아, 아까 화내서 미안해“
내 사과를 듣기나 했는지 승환이는 맛나게 국을 더 퍼서 마셨고, 내가 식판을 비울 때까지 군말 없이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식사 내내 특별한 소통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 나를 바라보는 승환이의 눈빛에서 전해지는 마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 천천히 드세요. 체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