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교육실습생에게 건네는 비밀코드 [소나기]

-특수학교 2개월 차 생존 보고서-

by 스페셜K

고작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휴일을 제외하면 마흔 날 남짓,

행복한 학교생활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급급했던 나날이었다. 나는 동료들의 여유가 부러웠다. 분명 숨이 턱턱 막혀오는데 나비마냥 여유 있게 나풀거리며 아이들과 꽃길 같은 하루를 만끽하는 그들의 생존 비법이 절실했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는 역시 진리였다. 인생은 실전이었고 실전을 통해 깨우친 지혜-혹은 요령이라고 불릴 것들-은 봄날의 잡초처럼 어느새 내 의식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그때쯤인 것 같다. 누가 뭐래도 꽃은 원래 비포장도로에서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덜컹덜컹한 하루 속에 자연스레 학교에 녹아드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도


지금에서야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돌이켜보면 두 달여간의 시간은 내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무렵, 우리 교실에 한 명의 교육실습생이(일명 교생선생님) 찾아왔다.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에게 일단 존경심부터 표하며 수업과 생활지도에 앞서 먼저 생존을 위해 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몇 가지가 있어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려 한다.


처음 발령받았을 때, 장애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로 특수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자질이 무엇일지 자문해 보았었다.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또는 장애 특성에 대한 이해 같은 것들을 떠올렸었다. (물론 이것들도 중요하지만, 훗…. 풋내기 같은)


두 달여를 보내고 나니 간신히 알 것 같은 그 자질은 [소나기]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라는 옛 어른들의 말처럼 무조건 피해야 할 장소로서 특수학교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 겁부터 집어먹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소음 식사에 능해야만 한다. 학교 급식실이야 원래 어느 정도의 소음은 각오해야 하는 곳이지만 특수학교의 소음은 그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반찬이 줄어드는 것이 서러운 건지, 두 귀를 막고 오열하는 학생부터 수업 시간에 쌓인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식탁을 쾅쾅 내려치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 “애미야, 국이 짜다”라면서 인상 깊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재현하듯 식판을 뒤엎는 아이까지 이쯤 되면 소란함의 구렁텅이라는 표현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러다 보니 학기 초에는 나뿐만 아니라 소화불량을 호소하며 식사를 포기하시는 선생님들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교사들도 어떻게든 먹어야 수업도 하고 아이들 생활지도 할 수 있기에 소란함 속에서도 내면의 만트라를 그려내며 위장 속 은혜로움을 지켜낼 수 있는 소음 식사 능력은 단연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의 첫 번째 자질로 꼽을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도 첫날 급식실의 소음과 예상치 못한 사건들 때문에 밥숟가락을 몇 번 들지 못한 채 식사를 마친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학생 눈물을 국물 삼고 튀기는 침을 소스 삼으며 가볍게 식판을 비워냈다. 국은 두 그릇이나 비운 것 같다. 심지어 고질적 위장병이 특수학교에 와서 나았다는 선생님도 계시니 속쓰림에 겔XX를 달고 다니시는 분은 특수학교 근무를 권해보고 싶다.


두 번째는 나 홀로 원맨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철저한 교재연구와 흥미로운 학습자료 거기에 재미를 더하는 유튜브 영상과 교육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반의 준비를 통해 몰입감과 스릴 넘치는 수업이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아이들의 주의 집중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5분이라도 수업에 집중해 준다면, 그 수업은 꽤 성공적인 수업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정도다.


혹시 자료 준비가 부족해 집중하지 못한 것은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자료가 화려해지면 그때야말로 아비규환의 시작이다. 기억해야 할 학습 주제는 남지 않고 자료와 활동만 남게 되는 수업은 결국 아이들에게 하나의 깜짝 이벤트로 기억될 뿐이고 배움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 어른들이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괜히 쓰신 게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집중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려 40분이다. 노래도 관객의 박수와 환호가 있어야 부르는 맛이 나고 글도 읽어주는 이가 있어야 쓸 수 있지만 바라봐 주는 이 없는 긴긴 시간을 채우는 나의 교수 활동은 때론 처량하기도 하고 때론 막막하기도 한 애처로운 몸부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40분을 채워야겠다는 무모한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했던 시기도 잠깐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결코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이젠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할 테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반응이 어떻든 간에, 일단 내가 재미있고 내가 신나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로 재미있어서 나 혼자서라도 신나게 수업하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도 그 모습에 매료되어 함께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재미없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하면 아이들도 신나지 않는다. 그럼 40분간의 시간을 마지못해 보내게 되고 나는 수업전쟁에서 패배한 패잔병이 되어 자존감이 수직으로 하락하고 만다. 따라서 아이들도 재미있지만 나도 재미있고 나도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수업에 가미하면서, 내가 먼저 즐기는 것은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두 번째 자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세 번째로 꼽는 것은 록 초기화에 대한 내성이다. 함께 활동했던 내용부터 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한 학급 규칙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가르치고 반복 연습했다 하더라도 주말이 지나면 “우리가 그런 걸 배웠어요?”, “우리가 그러기로 했던가요?”라는 표정으로 돌아와 있는 아이들을 보면 흔히 말하는 현타가 세게 온다. 때로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방식이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자괴감마저 들기도 하는데, 100% 완벽한 교육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게 존재한다면 교육과정이 이리도 수시로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방식을 찾기 위해 고민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또 우리 아이들이 금방 습득하고 습득한 내용을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곳에서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해야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현타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나기 전략을 습득하며 지난 2개월을 보냈다. 버텨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버겁기만 한 시간이었지만 마치 소나기가 그치면 세상이 맑게 보이듯 나도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물을 부으면 저절로 부풀어 오르는 식당용 동전 물티슈처럼 순식간에 자라지 않는다. 머리카락처럼 자란다. 매일 조금씩,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자란다.


때로는 그 성장 속도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기다리기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학교 버스에서 내려 의젓하게 우리 교실을 향해 걸어오는 아이,

점심 식사 후 잔반을 능숙하게 정리하고 급식실을 나서는 아이,

수업 시간에 읽어준 책을 소리 없이 펼쳐보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확신한다. 아이들은 분명히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마치 소나기가 지나간 뒤, 움튼 새싹이 세상을 향해 힘차게 고개를 내밀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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