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햄버거, 푸드트럭, 마라맛은 필수

- 학생회 담당 교사가 본 맛있는 선거 이야기 -

by 스페셜K

보낸사람: 교사 000

받는사람: 담임(고등과정)

제5대 학생회 임원 선거를 위한 후보자를 모집 공고합니다. 관심 있는 학생은 2학년 2반 교실로…. (중략)


나는 특수학교에서 2학년 담임교사라는 역할 외에 학생회 담당 교사라는 또 하나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3월에는 학생회 임원단을 꾸려야 하는데 초, 중, 고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특수학교의 특성상 전교 회장 입후보의 조건은 고등학교 이상의 학생이어야만 한다. 혹시 회장 역할을 꺼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올해에 무려 세 학생이 입후보를 마쳤다.


숱한 사회변혁과 경제발전을 이룬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이지만 아직 양당 독식 체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한계를 명확히 직시하며 세 명의 후보를 통해 제 3지대 정치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한 우리 아이들을 보니 뿌듯한 마음에 절로 주먹을 들어 응원하게 된다. 그 응원에 힘입은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을 확인해 보니 이제 응원을 넘어 환호성이 절로 나올 듯하다. 그 재밌고도 기발한 공약을 들어보기 위해 잠시 후보들의 마지막 유세 현장을 들러보도록 하자.


첫 번째 후보의 공약은 우선 급식이 맛있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럼, 그동안 급식이 맛이 없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기도 한데….

(급식실에서 조리사님들이 도마 위 고기며 채소를 조사버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물론 후보자의 공약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그런 뜻은 아니니 조리사님들, 오늘 급식메뉴 주재료들의 옥체는 보존해 주소서.


사실 이 공약은 매월 특색있는 급식을 제안하겠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햄버거 먹는 날, 마라 데이 같은 특별한 급식의 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밥 국 삼찬을 기본으로 알고 살아온 나로서는 어허~ 통제라 나는 반대일세라며 고개를 돌리고 싶다만 투표권이 없는 나의 고갯짓은 후보에게 씨알도 안 먹히겠지.


다음 공약은 흥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춤과 노래의 민족 후예임을 잊지 않은 그대는 역시나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한국인임은 물론이며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는 배달의 민족이었구려! 다만 어떻게 흥이 나게 하겠다는 것인지 물으니, 회장이 되면 보여주겠다는 초선 정치인 같은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말에 하도 많이 속아봐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쏭달쏭한 순간에 홀연히 사라진 첫 번째 후보를 대신해 어느새 두 번째 후보가 연단 위에 올라섰다.


두 번째 후보의 첫 번째 공약은 독서 활성화! 책 읽는 우리 학교를 만들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당신의 당찬 포부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겠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왜 이리도 싸늘한지, 몇몇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왜 더 커진 것처럼 들리는지 기묘할 따름이다. 분위기를 읽어내었는지 두 번째 후보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벼락같이 두 번째 공약을 꺼냈는데 그 내용은 역시나 맛있는 급식! 유권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정치인의 덕목인 것을 아는 듯 분위기를 전환하는 두 번째 후보자의 노련함에 웃음이 절로 나오며 박수를 보냈다. 자칫 얼어붙을 뻔한 유세 기회를 기사회생시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두 번째 후보 뒤로 마지막 세 번째 후보가 연단에 선다.


세 번째 후보자의 공약은 글쎄, 차별화에 방점을 두었다고나 할까? 우선 내가 제시하는 공약보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자 「우리 학교 소리함」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민의를 정책에 녹이겠다는 그 공약은 언뜻 학우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층마다 소리함을 설치했는데 그 안이 텅텅 비어 소리함이 아닌 음소거함이 되어버린다면? 업무 담당자로서 아득함이 밀려온다.


그 와중에 두 번째 공약, 학교 내 칭찬마켓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칭찬마켓은 말 그대로 담임 선생님께 받은 칭찬 쿠폰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사는 깜짝 장터인데 이 장터를 좀 더 다채롭게 구성하고 가능하다면 푸드트럭까지 섭외하겠다는 것이다. 호오 스케일 보소! 하지만 뽀0로 비타민과 마0쮸는 많이 먹어봤어도 푸드트럭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깊은 인상을 준 공약이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절절한 목소리로 학우들의 한 표를 구하는 호소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선거의 시간이 다가왔다.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는 친구들은 이름을 쓰고, 그게 어려우면 자기 이름 옆에 동그라미라도 표시해 선거인 명부를 작성한 아이들은 투표용지를 받아 차례차례 기표소로 들어갔다. 후보들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는데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집어넣을 때마다 받는 카메라 세례는 어느 유력 대권주자 못지않다.


투표가 종료되고 30분 남짓 시간이 지나자 결국 압승으로 회장이 선출되었다. 누가 당선되었는지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으니 아쉬워하지 마시길! 다만 연설 순서를 기다리며 다리를 덜덜 떨고, 자기 순서가 되었을 때 친구들 앞에서 꿀꺽 침을 삼키며 목젖을 울리던 후보들의 도전과 용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기에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모두 승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선자 수락 연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정말 000 뽑길 잘했다! 하는 회장이 되겠습니다.”


오늘 선출된 회장이 훗날 학교를 지나갈 때가 되면 “내가 그때 처음으로 000를 했는데 후배들은 지금도 그걸 하고 있을까?” 하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일을 같이 만들어 보고 싶다. 담당 교사가 시킨 일을 앵무새처럼 수행하거나 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부터 내는 회장이 아닌 임원들과의 적극적인 토론과 숙의의 과정을 통해 가슴이 뛰는 일을 하는 그런 학생회 말이다. 그 자부심으로 세상 앞에 당당히 나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내 가슴도 얼마나 벅찰지 상상하니 어느새 두 볼이 상기된다.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학창 시절 줄반장 한번 해보지 못한 내가 주제넘은 궁리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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