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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un 06. 2024

요즘 힘들다는 친구에게

누구보다 널 사랑하는 친구가

  하얀 도화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 가끔씩 느끼는 건데, 바탕일 뿐인 하얀 종이와, 사물에서 빛을 받아 반짝이는 부분은 같은 정도로 하얘. 그저 주변의 그림자들이 하얀 도화지를 반짝이는 빛으로 만들었어. 만약에 삶이 반짝이는 순간으로만 가득하다면, 그건 하얀 도화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을 거야.


며칠 전에 엄마랑 같이 안양천을 산책했거든. 그때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봤어. 나무가 허파로 숨 쉬듯 바람을 양껏 들이마시고,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꼭 피아노를 치는 것 같았어. 네가 여름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름이 오고 있어. 사실 나는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여름의 몇몇 부분들을 사랑해.


나뭇잎 그림자와 황금빛 햇살이 그리는 나무그늘.

새파란 하늘아래 뭉게구름이 뜨고,

새들은 봄보다 일찍 울기 시작해.


사실 나도 오늘 그냥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었어.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 집 창문에 앉았어. 난간도 있고, 실외기도 있는데, 그 힘겹게 매달려야 하는 창문에 앉았어. 다시 날아가는 나비를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나비가 어떻게 나는지 알지? 엄청 휘청거리듯이 날잖아.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팔랑이는데, 문득 그냥 눈물이 났어.


새들도 날고, 나비도 날고, 벌도 날지만, 나는 법은 다 다르더라.

못 날아도 땅에서 사는 새도 있고, 한평생 땅아래서 사는 숨도 있어.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어. 사는 게 버거운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는 법이 있겠구나. 나는 아직 사는 법을 찾지 못해서 삶이 버거운 것뿐이구나. 내가 매미인지, 새인지, 아니면 그냥 이리저리 피어있는 민들레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뭐가 되지 않아도 괜찮구나.


사실, 내가 나의 전부를 사랑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를 볼 때, 나는 그 순간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가장 실감해. 그거면 돼.

우리가 매 순간 나를 사랑하며 살 수는 없어. 나는 오늘 와 화해했지만 내일이면 또 미친 듯이 싸우겠지.


오늘밤 잠들기 전까지 너는 지치고 힘들어서, 이제는 사람을 믿기 싫어졌다고 말하고,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너는 별거 아닌 일로 웃다가 깨달을지도 몰라.


이게 너의 사는 법이라는 걸.

이 글이 너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긴 글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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