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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장례식

팔랑거렸다.

by 사유

14:30 입관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선아 고모는 차가운 쇠수레 위에 누워 있었다. 몇겹의 황색 천으로 꽁꽁 쌓여 수술대같이 생긴 쇠판 위에 누워있었다. 촘촘하게 천으로 싸매 고모의 맨 살이 보이지 않았다.

닫힌 철문 너머로 그들은 고모가 차가울 것이라 했다. 당연한 것이니 놀라지 말라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는 것이니 좋은 말들을 해달라고 했다. 눈물이 옷에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써달라 했다.

그들이 얼굴을 덮은 천을 걷었다. 황색 삼베 아래 하얀 삼베 마저 거두니 그제야 고모의 맨살이 보였다.
핏기가 없다. 창백한 납빛의 얼굴에는 코에도 입에도 하얀 것으로 가득했다.
고모는 누렇지도 하얗지도 붉지도 않았다.
고모는 언제나 붉은 홍조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볼이 붉지가 않았다.
고모는 연필로 그린 그림처럼 색이 빠져 있었다. 찰필을 문질러 움푹 패인 뺨을 그릴 때처럼 회색빛이었다. 손가락으로 몇번이고 문질러 펴야하는 것처럼 옅은 그림자였다.



죽음은 하얀색이다.
어쩌면 황색 삼베 천이다.

고모들과 아빠는 선아 고모를 두고 천천히 돌았다. 겹겹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마 위로 입술 위로 뺨 위로 손들이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검은 등들이 잘게 떨리고 남매들은 셋째의 어린 얼굴을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라 몇십년 전의 모습을, 같이 밥을 먹던 어린 낯을 떠올린다.

내게 등을 보이고 선 막내 고모가 한바퀴 반을 돌아 다시 내게 얼굴을 보일 무렵에 막내 고모가 주저앉았다.

언니, 언니, 언니.

아빠가 무너지는 고모의 한쪽 팔을 붙들었다. 다시 일어날 때까지 단단히 붙잡고 놓지 않았다. 몇번이고 막내 고모는 주저앉았다.

언니, 언니, 언니.

나랑 같이 오래 살기로 했잖아. 내가 언니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정희야 선아도 다 알아. 괜찮아.

막내 고모가 선아 고모 위로 엎어졌다. 울부짖고 숨을 들이키고 다시 울부짖었다. 울부짖기 위해 숨을 들이켰다. 손톱으로 붙들려다가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잘게 떨리는 손으로 쓸어내렸다.


장례를 업으로 삼았을 그들 중 한 명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십번 겪어도 그 울부짖음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지워낼 수 없는 것이다.


유리창 너머로 막내 고모의 검은 등이 나올 차례면 검은 등 대신 선아 고모의 밀랍같은 얼굴이 한차례 먼저 보였다.

막내 고모는 아주 더디게 걸었다. 무릎으로 한쪽 팔로 양 발로 몸을 지탱하며 온몸으로 걸었다. 다섯 걸음 떼기도 전에 다시 온몸으로 걸었다.




다음 절차를 위해 그들이 아빠와 고모들을 내보냈다. 실신할 것처럼 울던 막내고모는 아빠에게 반쯤 업혀 기어나왔다.


유리창 너머로 목사가 뭐라 말을 했다.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끝으로 말했다. 아멘.

기독교가 아닌지라 나는 입술만을 부딪혀 따라했다. 아멘.


그들은 다시 하얀 천을 올리고 황색의 천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시 열지 않을 것처럼 꽁꽁 싸맸다. 누런 천으로 고모는 꽁꽁 묶였다. 얇고 긴 천으로 가슴 팔뚝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목을 묶었다.


밖에서도 울부짖는 막내 고모의 검은 등 위로 언니들의 손이 날아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몇번이고 쓸어내리고 그때마다 천이 스쳐 사박거렸다. 막내 고모의 눈물이 묻어 유리창이 번들거렸다. 그게 꼭 눈물에 유리가 녹아내린 것처럼 보였다.


천으로 모두 묶고난 뒤에 그들은 다시 가족들을 불러모아 매듭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옛날에는 왕비만 하던 아주 귀한, 현생은 몰라도 내생에는 행복하라고 꽃으로. 그 말대로 겹겹이 감싼 천의 끝부분마다 꽃모양이 그려져있다.


꼭 고치같다.

나비가 되기 전에 번데기 같다.


화장을 할 것이니 불 속에서 매듭이 다 탈 것이다. 겹겹이 감싼 고치를 가르고 불길 속에서 고모는 나비가 될 것이다. 나비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갈 것이다.

선아 고모가 들어있는 고치를 들어올려 관에 뉘였다. 관 안은 하얀 안개꽃으로 가득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덮은 하얀 천의 소재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꽃다발의 내지, 깃털처럼 가벼운 천 위로 고모의 이름이 붉은색으로 적혀 있었다.


-관뚜껑을 덮을 것이니 고개를 돌려주세요.

고개를 돌리고 하얀 벽을 보았다. 고모의 손이 생각나지 않았다. 주름이 졌던가. 투실한 거친 손이었던 건 기억난다. 그 손은 지금 고치 속에서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허공을 붙드는 손 모양일까. 추워서 주먹을 쥐고 있을까. 창백할까.

입관이 끝났다.
끝내 나는 고모의 맨 손을 기억할 수 없었다. 나오는 길에 첫째 고모의 등에 부딪혀 벽면의 손세정제가 떨어졌다.

아니, 팔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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