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by dy


나는 오늘, 머리를 잘랐다. 오랫동안 어깨 아래로 흐르며 나를 둘러싸던 긴 머리카락이 문득 걸리적거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어느새 결심이 되었다. 어깨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감각을 일으키며 흩어지던 머리카락, 그 자유분방한 흐름이 이상하게도 싫어졌다. 어쩌면 나는 내 머리카락이 미웠던 걸지도 모른다. 방향 없이 흩어지는 그 혼란스러움이, 마치 내 마음속 어딘가를 그대로 비추는 듯했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잘라내려는 것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갑자기 내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간다는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차가운 가위 날이 내 목덜미 가까이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쌓여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나도 함께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시간 묵혀온 감정들이 가위날에 쓸려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나, 얽히고설킨 감정들도 이렇게 잘라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지럽게 바닥을 흩어지는 머리카락과 달리,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떨어질수록 가벼워져야 할 내 마음도 묘하게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는 미련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위가 빠르게 움직이며 남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자르고 있었다. 차가운 가위 끝이 내 목을 스칠 때마다, 그 끝에 남은 미련이 함께 잘려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을 때, 세찬 물줄기가 목 뒤를 스쳐 지나갔다. 아직 남아 있는 미련을 함께 씻어내는 것처럼,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그 물줄기 속에 몸을 맡겼다. 시원하게 짧아진 목덜미를 만질 때마다 조금씩 나아가려는 마음이 더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바라보았다. 짧아진 머리카락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목덜미를 더듬었다. 어딘가 허전한 듯한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마치 내 삶에 자리 잡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지만 아직 그 자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듯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모두 흘려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를 메운 텅 빈 공허감이 나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문득 눈에 들어온 하나의 짧은 머리카락.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작은 머리카락 하나를 손가락으로 떼어내며 나는 내 삶에 남아 있는 작고도 끈질긴 미련이 떠올랐다. 흘려보내려 했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작은 흔적들. 미련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아주듯, 나는 천천히 손끝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흘려보냈다.


다시 거울을 바라보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내 모습이 있었다. 낯선 듯하면서도 조금은 가벼워진 나 자신. 거울 속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늘 머리를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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