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by dy


잠에서 깨어났다. 공기는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고, 방 안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손을 뻗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새어 들어오는 미약한 불빛이나 조그마한 소리조차 없는 완벽한 정적. 눈을 감은 것과 눈을 뜬 것이 다르지 않은 공간 속에서, 나는 왜인지 지금이 오전 2시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어두운 침묵 속에서 시간만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몸은 어딘가 불편해 잠든 채로 억눌렸던 긴장이 풀리듯 천천히 하늘을 향해 뻗어진다. 눈을 감기 전까지도 남아있던 어제의 기억들은 낡은 종이처럼 부서져 흩어져 버린 듯하다. 어제는 더는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무언가 결심했을 터였다. 그러나 눈을 뜬 지금, 그 다짐은 감정의 무게 속에 짓눌린 채 자취조차 없다. 머릿속을 헤집고 다짐을 되찾으려 해도, 마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어제,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직전에 떠오른 상상은 참으로 이상하고도 선명했다. 목에 차가운 칼날이 닿는 느낌이 어떤 것일지, 그것이 피부를 뚫고 지나간다면 무슨 감각일지. 날카로운 칼날이 나를 관통하고 반대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나는 어떻게 될까. 그 칼날이 나의 마지막 순간을 가져다줄 거라는 확신을 품은 채 눈을 감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어젯밤, 나는 분명 조용한 방에서 중문을 열고 나가 주방에 들어섰다. 손에는 길고도 섬뜩한 날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칼날을 손에 쥔 채 잠들었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이 방에, 이 순간에, 깨어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지만, 이상하게도 몸 어딘가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건 배고픔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단순하지만 필연적인 감각. 나는 밥을 먹어야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중문을 넘어 주방으로 향한다. 어제 사둔 라면을 꺼내려 서랍을 여니, 눈앞에 어젯밤 내 손에 들려 있던 시퍼런 칼이 그대로 놓여 있다. 그 칼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멍해진다. 내가 어젯밤에 꿨던 건 단지 꿈이었을까, 아니면 지금이 꿈인 걸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잠재우고,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라면을 끓인다. 한없이 아무 생각 없이 먹는다. 씹고, 삼키며, 기계처럼 열량을 몸속으로 내려 보낸다.


식사가 끝나고 나니 또다시 머릿속은 텅 비어버린 듯하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무거운 감정 속에서, 몸은 다시금 침대 위로 누워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방 안은 여전히 검고 고요하기만 하다. 어둠 속에서 시간은 멈춘 듯 흐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없고, 어떤 빛도 없다.


다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다. 손에는 자연스럽게 기다란 칼이 들려 있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오른손에서 다시 왼손으로 물체를 넘기며 천천히 손에 감각을 익힌다. 왼손을 들어 목 가까이에 대고, 목과 손이 직각을 이루도록 한다. 이제 이 칼날이 내 목을 스쳐 지나가면, 눈을 뜨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방 안, 여전히 깊은 어둠이 나를 감싸고 있다. 손에는 아무 감각도 없다. 눈을 뜬 지금 이 시간은 다시, 2시일 것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머리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