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두운 화장실 창문 너머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작은 실루엣이 바깥에서 빛나는 눈을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였다. 창문 틈새로 얼굴을 들이밀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는 그 고양이의 눈빛은 무언가를 노리는 듯 날카로웠다. 나는 무심코 입에 음식을 가져갔다가, 고양이가 작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끼익 끼익 운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치 내 음식을 탐내는 것 같았다. 먹다 남은 조각을 손가락 끝으로 떼어내 고양이 쪽으로 던져주자, 고양이는 날렵하게 점프하며 그것을 낚아챌 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녀석은 창문 아래로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제야 작은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에는 또 다른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고양이는 조금 더 큰, 어른 고양이였다. 검은 눈동자는 무언가 강렬한 빛을 띠고 있었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은 마치 도전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이번에는 음식을 주지 않고 가벼운 장난으로 물을 뿌려보았다. 물방울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양이는 잠깐 움찔하는 듯싶더니 이내 더욱 가까이 다가와 창문 틈으로 얼굴을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고양이의 몸이 점점 커지며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숨을 멈춘 채 그것을 지켜보았다. 고양이였던 존재는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이 어른 고양이였는지 아니면 또 다른 존재였는지는 이제 알 수 없었다. 당황한 나는 재빨리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
문을 닫고 한숨을 돌린 순간, 문 반대편에 여전히 그 형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나는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형체는 그 즉시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 공포심에 사로잡혀 얼른 문을 닫으려 했지만, 그 존재의 손가락이 문틈에 끼인 것처럼 보였다. 놀라 얼른 문을 다시 열었고, 형체는 한 발 한 발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내 앞에 선 그 존재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긴 손가락 끝에는 붉은색 손톱이 날카롭게 자라 있었지만, 유독 새끼손가락 옆의 손톱만 짧았다. 혹시 방금 손톱이 부러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그녀는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밤의 무엇'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본인도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듯 혼란스러워 보였다. 나도 묘한 안도감과 궁금증 속에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갑자기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시간이 다 되었다며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문을 나서면서 내게 한마디를 남겼다. "시니가미가 올 거예요. 교대가 끝나면 다시 올게요."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방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깊은 정적이 방 안을 감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 무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거친 발소리가 서서히 들려오며, 무언가 집 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나는 무서워서 작은 노트북의 희미한 빛을 붙잡고 문 앞에 서서 발소리를 듣고 있었다. 발소리는 계단을 따라 천천히 2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돌아온 줄 알고 문을 열어보니, 검은 형체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윤곽만 드러난 그 형체는 서서히 다가와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기운이 내 배 한쪽을 움켜쥐며, 입을 벌려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듯했다. 나는 팔을 꼬집으며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형체는 날카로운 숨소리를 내며 나를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죽음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두려움에 입에서 알 수 없는 비명이 흘러나왔고, 그제야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침대에 누워 한쪽 손을 꼬집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꿈이었나. 그러나 온몸에 스며든 차가운 기운은 꿈의 여운을 오래도록 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