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시야

by dy


5평 남짓한 방안,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형광등이 켜져있다. 무심히 내려다 본 바닥에는 누군가의 머리카락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짐, 그리고 널부러진 옷들이 보인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내 뇌리에 박힌다. 차례 차례 순서대로 뇌리에 박힐 때마다, 어지러워 속을 게워내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든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이 메스꺼움을 달랠 수 있는 무언가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게 하고 싶다.


바깥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 찰나 어지러움에 몸이 한쪽으로 기울러지며, 눈에 씌어진 덮개가 땅으로 떨어진다. 내 몸에서 하나의 피사체가 떨어져 나가, 타그닥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뒹군다. 떨어져 나간 건 안경이다. 나는 안경을 벗었다. 아니, 벗겨졌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어딘가 떨어져 있을 안경을 찾는다. 뚜렷한 시야에서 갑작스럽게 흐릿한 시야로의 변화와 아직 적응되지 않은 익숙하지 않은 느낌에 다시 한번 속을 게워내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지만, 어디서도 안경을 찾을 수 없다. 빨리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채우고, 안경을 찾는 것을 포기한 채 현관으로 발을 돌린다.


현관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나는 안경을 벗고 밖으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흐릿한 시야로 불빛의 번짐과 사물의 미세한 모습이 눈을 통해 뇌리에 상을 맺는다. 지금까지 보았던 뚜렷한 세상이 아닌, 경계가 모호한 세상에 들어온 것 같다. 속에서, 머리에서 아직까지 어지러움이 느껴지며, 헛구역질이 다시 올라올 것 같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발은 움직일 때마다, 원근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한다. 걷는 게 힘들다. 손으로 더듬어 가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안경을 찾아야 할까? 생각할 겨를 없이 다시 한번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빛 한 점 없던 고요한 복도에, 침입자를 확인하듯 주황색 형광등에 불빛이 들어온다. 눈에 보이는 건 끝없이 이어진 복도와 잠시 켜진 형광등. 눈에 맺힌 상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이곳이 복도의 한 지점이라는, 내 집 현관문 앞이라는 것만 느낌으로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가만히 복도에 서 있으면 주황색 흐릿한 시야에서, 자동으로 꺼진 형광등으로 빛이 없는 완전한 어둠에 휩싸인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을 알고 있는데, 흐릿해지고 어두워진 시야 때문에 앞으로 한 발 내딛기가 어렵다. 손을 휘두르며 겨우 도달한 곳에는 계단이 있고, 아래로 내려간다. 높이의 원근감이 잡히지 않아 어렵게 한 발씩 내려가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은 다른 세상인 것 같다.


이미 세상은 어둠에 잡힌 새벽 3시, 하지만 주위의 불빛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다. 흐릿한 시야로 앞으로 향하는 곳은 아직 알지 못하는 세상. 앞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작은 단풍잎도, 피다 버려진 담배꽁초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꼈을 때는 보였던 것 같은데, 더 이상 내 머릿속으로는 들어오지 않는 물건과 피사체들이다.


손에 쥐어진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에 불을 붙인다. 새벽의 공기와 뜨거운 연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며, 익숙한 무언가를 느낀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불빛이 번져져 있는 그대로 시야를 감싼다.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발, 한 발, 흐릿한 밤의 한쪽 편을 걸어나간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대략적인 윤곽만 보이지만 앞으로는 나아갈 수 있다. 걸음에 스피드를 올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제는 뛰어서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흐릿해진 시야에서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쉬워진 것 같다.


왼손에 들고 있던 담배에서 뜨거움이 느껴진다. 마지막 한 모금. 이제 다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전과 같은 흐릿해진 길을 따라 걸어온다.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한번 바닥을 더듬어 본다. 한쪽에 떨어져 있는 안경을 줍는다. 안경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다. 다시 모든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는 짐들도 다시 내 뇌리 속에 박힌다. 아까와 같은 헛구역질이 날 것 같다. 이전과는 달리 기분 좋지 않은 헛구역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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