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파란빛을 바라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기분 좋은 마음에 술 한 잔을 마시며 걷고 있으니, 살랑살랑 스치는 바람이 뺨을 적시는 순간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다리를 움직이며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데, 땀이 조금씩 스며들어도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금세 말려주니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파란 하늘 위에 여러 개 떠 있는 하얀 구름들을 보며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상상을 하면서 그 속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는 너의 마음 같다고 할까.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취기를 달래 보려 하자. 달달한 아이스티가 입안으로 들어와 혀에서는 씁쓸하고 달콤한 맛이 번진다. 그 차가운 느낌이 목을 넘어가면서 눈의 초점이 희미해지는 지금 이 순간이, 이상하리만큼 좋다. 에어컨 바람도, 선풍기 바람도 아닌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알 수 없는 선선한 바람이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까지 스치며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주니, 조금 전까지 올라오던 취기가 스르르 사라질 것만 같다.
지금 집이라면 몸을 뒤로 기댄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 수 있을 텐데. 그럼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완성될 텐데, 지금은 걷고 있기에 그러지 못한다. 그럼에도 푸른 하늘과 그 아래의 선선한 바람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이 순간만으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단순히 걷고 보고 느끼는 것뿐일 텐데, 그 어떤 것보다 충만한 행복감을 누가 알가. 누구와 비교하거나 무엇을 바라는 마음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충심함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 하루를 더 빛나게 한다.
귀에는 익숙한 노래가 흘러들어와 지금의 행복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어떤 고민도 없이 행복만이 느껴지는 이 기분을 누구에게든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만족감이 차오르고, 어딘가로 향해 걷는 것이 살짝 지겨워질 즈음 들어온 이 카페는 지금의 행복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걷기만 해도 충만했던 그 감정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잔잔하게 이어졌다. 바람과 햇살의 여운이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오늘 하루의 부드러운 잔향을 더 느끼고 싶어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샤워실로 향하던 순간, 바깥에서 느꼈던 행복이 집 안의 고요한 공기와 만나 또 다른 감정으로 스며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문을 열자, 몸에서 피어오른 따뜻한 수증기와 함께 향기로운 바디워시 향이 방 안으로 퍼진다. 은은한 바닐라 향이 나를 감싸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앞의 공기까지 바닐라 향으로 부드럽게 물들어간다. 냉장고 문을 열러 시원하게 진열된 맥주 한 캔을 들어 올린다.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기에 마실까 말까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 그 고민은 곧 다음 행동을 막지 못한다. 서랍에서 꺼내 잔에 시원한 맥주를 따라 붓는다.
얼핏 보면 아무 일도 없는 하루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날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