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에 아무도 없으면 좋겠다. 아무도 내 전화번호를 모르면 좋겠고, 아무하고도 연결되지 않으면 좋겠다. 있는 듯, 없는 듯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단순히 숨만 쉬고 살아가면 좋겠고, 아무런 생각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좋겠고, 아무하고도 연관되지 않으면 좋겠다. 아무도 내가 있는지 몰랐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투명한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행복할 거 같은데,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더 나할 것 없이 기쁠 텐데.
그런데 주변의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한다. 분명히 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왜 무심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틀고 얼굴을 한 번 들고 그 방향으로 돌려 보는 걸까. 투명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하고도 연관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살고 싶다고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데, 왜 그 조그마한 외부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걸까. 나는 혼자 살아가고 싶은 게 아니까. 나는 투명하게 살아가고 싶은 게 아닐 걸까.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과 내 몸이 반응하는 게 왜 다른 걸까. 몸이 이를 따르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몸은 머리가 아닌 어떤 걸 따르는 걸까. 무엇이 내 몸을 움찔하게 그리고 그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걸까. 머리로 생각하는 게 몸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닌 걸까.
내가 원하는 혼자만의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향하면 안 된다. 그렇기에 외부와의 차단을 위해서 이어폰을 끼고 외부를 차단한다. 하지만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소리를 모두 막을 수 없기에, 다시 한번 몸이 반응한다. 볼륨을 높인다. 그러면 세어 들어오는 소리는 음악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한번 몸이 움찔 반응해서 방향을 돌린다면, 그때는 다시 한번 볼륨을 높이면 된다.
하지만 이는 외부를 차단하여 내 생각을 실천하는 것일 뿐, 이어폰을 제거하면 다시 그 주위에 동화되어 내 생각과는 달리 몸이 움찔하며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내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냥 몸이 움직이는 데로 두어야 하는 걸까. 몸이 반응하게 두고 생각은 생각대로 두는 것이 맞는 걸까.
아직까지 시행착오의 과정이기에 어떤 게 맞고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이어폰의 볼륨을 높이고 투명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