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어두운방

by dy


두 눈의 초점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눈앞에 펼쳐진 방은 단지 형체의 집합일 뿐, 의미도 온기도 없다. 침대는 몸을 눕히라는 명령만을, 서랍은 물건을 넣으라는 목적만을, 의자는 앉으라는 기능만을 품고 존재한다.


이 방은 목적만을 지닌 사물들의 무심한 침묵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서서히 온기를 잃어간다.


갑자기, 기계음이 방을 파고든다. 냉장고의 모터가 윙-, 하고 울부짖는다. 잠겨 있던 적막은 깨지고, 반복적인 소음이 방의 공기를 진동시키며 천천히 퍼진다. 그 반복은 시간의 감각을 찢고, 나의 생각을 하나씩 잠식한다.


생각을 멈춘 지 오래다. 이미 나는 사유라는 기능을 포기한 사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눈은 깜박이고, 공기는 들이마시고, 다시 내보낸다. 그저 그 반복만이 나를 유지한다. 차갑게 기계처럼.


이제 나는 존재가 아니라, 방의 음울한 호흡과 동기화된 하나의 물건이다. 내 목적은 단순하다. 숨을 쉬고, 버티는 것.


그뿐이다.


그러다 문득- 기계음이 끊어진다.

방 전체가 숨을 멈춘 듯 고요가 내려앉는다. 그 순간, 사물은 억지로 존재가 된다. 존재는 방의 표면 위로 미끄러져 나온다. 그리고 다시 사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귀에 박힌 이 정적의 결을 더듬는다. 정적 속에서 또 다른 정적을 찾아 헤맨다. 완전히 잠기기 위해.


시간은 녹아내리듯 흐르고,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빛줄기가 그저 빛의 잔상처럼 흔들린다. 그 빛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다시 사물이 된다. 방에 스며들듯, 잊히듯.


띵동- 초인종 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사물의 눈에 한순간 깨진 듯한 빛이 들어온다. 이 방을 찾을 사람은 없다. 며칠째 나를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


잘못 울린 소리겠거니, 다시 초점을 잃고 흐릿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려 한다.


띵동- 다시.

이번에 더 선명하게, 더 낯설게. 흐려지던 의식이 거친 손에 잡히듯 현실로 끌려온다. 무시할 수 없다. 확인하지 않으면 이 소리는 계속 나를 불러낼 것이다. 다시 사물로 가라앉기 위해서는, 이 방문을 지워야 한다.


삐걱- 움직여 본 지 오래된 몸을 일으키고, 문 앞까지 걸어간다.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 차디찬 공기가 폐부까지 파고든다. 바깥은 형광등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뿐이다.


아무도 없다. 누구도 없다.


하지만 귓속에는 여전히 '띵동'이 맴돈다. 두 번이나 울렸던 그 소리는 어디에서도 기원을 찾을 수 없다.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만든 빈틈에서 새어 나온 잔상이었을까.


문을 닫으려는 순간- 발치에 작은 상자가 걸린다.



극히 희미한 존재감을 가진, 마치 방의 어둠이 굳어져 생긴 조작 같은 상자. 언제부터 있었을까. 초인종과 함께 놓인 것일까, 아니면 내 눈이 사물이었기에 처음부터 보지 못했던 것일까. 어떤 가능성에도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상자를 들여다본다. 흐릿했던 초점이 서늘하게 모여진다. 상자 위에는 작은 글씨로 적혀있다.


"사물에서 존재로, 존재에서 사물로."


그 글씨가 마치 내 숨결을 읽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