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자, 문틈을 지나온 차가운 공기가 방 안의 공기와 부딪히며 기묘한 결을 만든다.
그 결 사이로 내 손에 들린 것이 묘하게 기울어진다. 마치 심장이 띄듯, 아주 미세하게 떨린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진동이 너무 실제적이다.
나는 그것을 책상 위, 사물들 사이에 내려놓는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더 무거워진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낯설게 느껴질 만큼.
상자를 바라보며, 내 안에 너무 오래 닫혀 있던 어떤 감각이 천천히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손가락이 뚜껑 위를 스친다.
가볍다.
속이 비어 있는 것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게보다 더 큰 존재감을 갖고 있다. 마치 나를 들여다보는 눈처럼.
나는 천천히 연다.
뚝- 뚜껑이 열린다.
소리는 기묘하게 깊게 울려 퍼지고, 방 전체를 진동시킨다. 방은 순식간에 듣는 감각을 잃어버린다.
바깥의 형광등 소리, 냉장고의 기계음, 심지어 내 호흡까지도, 모든 소리가 물속으로 가라앉듯 둔탁해지고 흐려진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태 있는 것'은 없다.
대신 그 안은 아주 희미한 어둠 같은 것, 빛인지 그림자인지도 모를 흐릿한 움직임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이 내 시선을 붙든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질감, 내 내부 어디에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
그러다 갑자기- 안의 어둠이 부풀어 오르며 내 시야 깊숙이 파고든다. 눈이 아니라, 머리 뒤쪽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그 속에서 어떤 목소리 아닌 목소리가 스며든다.
"너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그러나 분명히 들리는 음성.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방이, 벽이, 바닥이 모두 밀어내듯 따라온다.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방 전체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너는 오랫동안 사물이기를 원했다."
상자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이 서서히 방 안으로 번져간다. 마치 방이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어둠이 방을 집어삼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너는 존재였다. 그리고 다시 사물이 되었다. 너는 이 왕복을 반복해 왔다."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내 신경 하나하나에 가위처럼 걸린다. 안에서 한 줄기 빛인지 그림자인지 모를 선이 솟아오른다. 그것은 내 눈앞에 서서 내 실루엣을 따라 그린다.
그리고 그 선이 완성되자마자- 또 다른 '나'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사물처럼 고요하고, 존재처럼 서 있고,
하지만 나보다 더 '정적'에 가까운 형체.
그것은 미세하게 고개를 들어 대답을 기다리듯 내 얼굴을 바라본다.
"어느 쪽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 눈은, 내가 잃어버린 초점과, 내가 버렸던 생각과, 내가 감추어 두었던 빛을 모두 담고 있다.
나는 숨을 내쉰다. 숨을 내쉬는 순간, 방이 또 한 번 일렁인다.
그리고 상자 속의 내가, 입을 열지 않았는데도, 확실히 말한다.
"이제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