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선택순간

by dy


상자 속의 나와 마주 선채, 나는 숨을 들이마신다. 숨이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 방 전체의 공기가 부서진 유리알처럼 흔들린다. 그 흔들림 사이로, 그것이 다시 한번 아무 소리 없이 말한다.


"선택하라."


그 목소리는 귀에 닿지 않는데도 귓속을 울린다. 심장을 움켜쥐는 아릿한 감각이 손끝까지 파고든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은 뒤로 물러서려 한다. 하지만 뒤로 움직인 발이 닿은 바닥은 더 이상 원래의 바닥이 아니다.


차갑고 단단해야 할 바닥이 마치 젤리처럼 말랑하게 흔들린다. 방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방이 아니다. 상자의 어둠이 방의 경계를 갉아먹고 있으므로.


나는 그것을 바라본다.



그 형체는 처음보다 더 또렷해졌다. 피부 같은 표면이 생기고, 눈동자에는 희미한 빛이 맺힌다. 온몸이 나를 흉내 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적 생기 대신, 정적에 가까운 어떤 '멈춤'이 흐른다.


"너는 사물이기를 원했었다."


그것이 다시 움직인다. 입은 닫혀 있으나, 목소리는 분명하다.


"사물은 아프지 않는다. 사물은 기억하지 않는다. 사물은 버림받지도 않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방의 공기가 한 번 더 일렁인다. 천장이 뒤집힌 것처럼 비틀리고, 벽이 몸을 누르는 듯 다가온다. 숨을 들이마시기도, 내쉬기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존재는..."


그 형체가 천천히 손을 든다. 그 손가락 끝이 나를 향한다.


"..... 끝없이 되살아난다. 기억하고,느끼고,잃고,반복한다."


그 말은 칼날처럼 가슴을 가른다. 내가 오랫동안 숨기고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고요한 방 안에서 깨어난다.


나는 눈을 감고 이 방 안에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떠올린다. 무기력, 단절, 공허, 생각의 정지, 몸의 무거움, 그리고 현실에서 천천히 사라져 가던 내 흔적들.


모든 생각이 하나로 모일 때, 상자 속의 나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사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존재로 돌아올 것인가."


그 순간- 방 안의 모든 사물이 동시에 떨린다. 책상이, 의자가, 벽에 걸린 그림이, 바닥의 먼지까지. 마치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심장처럼.


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 손은 상자를 향해 뻗어진다.


그때- 상자 속의 나가 손을 내밀어 내 손목을 잡는다.


살아 있는 손의 온도도, 죽은 사물의 차가움도 아니다. 그 사이, 존재와 사물의 경계에 걸친 온도.


손목이 잡히는 순간, 나는 온몽이 끌어당겨지는 듯한 압력을 느낀다. 빨려 들어가는 것인지, 스스로 들어가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상자 속의 나가 속삭인다.


"너는 이미 선택했다."


그리고 세계가 어둠과 빛 사이에서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