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안쪽세계

by dy


세계가 숨을 들이마시는 듯한 진동이 멈추자, 나는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중력이 풀린 듯, 내 발끝이 바닥에서 조금 떠오른다.


손목을 붙잡고 있던 상자 속의 나는 그대로지만, 그 손의 압력은 점점 깊어져 살갗 안쪽, 뼛속까지 스며든다.


그리고- 툭.


마치 얇은 막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방 안에서 떨어져 나간다.


공간은 한순간 무너지는 것처럼 뒤틀리고, 빛이 꼬여 들고, 사물의 경계가 녹아내린다. 모든 것이 마치 오래된 필름을 찢어낸 뒤 거꾸로 재생되는 듯 비틀린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다. 그 어딘가는 '아래''위'도 아닌 방향이다. 아니 방향이라는 개념이 없는 곳 같다.


시야가 어둠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그 어둠은 색이 없다. 소리도 없다. 대신, 어떤 촉감 같은 것이 시야를 대신해 나를 감싼다.


촉감으로 이루어진 공간. 촉감으로 이루어진 빛. 촉감으로 이루어진 침묵.


아래도 위도 없지만, 분명히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그 흐름 속에서 느린 속도로 어둠의 바닥에 닿는다.


툭.


발이 닿는 순간, 눈앞에 희미한 형체가 떠오른다. 처음에 흐린 수면 같지만 서서히 형태를 갖춘다.



그것은 방이다.

하지만 내가 살던 공간이 아니다. 흐릿한 실루엣으로만 존재하는, '기억에 남은 방의 잔상' 같은 곳.


침대는 윤곽만 있고, 책상은 라인만 있으며, 서랍은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마치 모든 사물이 스케치를 멈춘 상태처럼 존재한다.


그 중앙에, 내가 있다.


아니- 방금까지 나를 끌어당겼던 상자 속의 나가 그곳에 서 있다.


그것은 여전히 정적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제 그 눈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 있다. 무언가가 틈 사이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입을 뗀다. 목소리가 나올지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곳은... 어디지?"


그것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 눈은 내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깊이로 나를 꿰뚫는다.


"너의 내부"


그 말이 울려 퍼지는 순간, 공간의 윤곽이 한 번 더 일렁인다. 그 파동은 벽을 통해, 구석을 지나, 내 온몸 깊숙한 곳까지 번져 온다.


그 형체가 다시 말한다.


"여기는 네가 버린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 말과 함께, 침대의 그림자가 길어지며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서랍의 윤곽이 뒤틀리며 안쪽에서 희미한 손 같은 것들이 기어 나오려 한다. 책상의 라인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그 안에서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진동이 흘러나온다.


천천히 숨을 삼킨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사물이 되기 위해 버렸던 것들'인 걸까.

그 존재가 걸어온다. 걸음마다 공간이 물결처럼 떨린다.


"너는 버릴 때마다 가벼워졌지만, 그 가벼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내 앞에 멈춘다.


"여기에 쌓였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공간의 윤곽에서 튀어나온 것들이 하나둘씩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다.

어둠으로 된 사람들. 움직임이 끊긴 얼굴. 표정이 삭제된 눈.

.

.

.

모두, 나다.

수십, 수백의 '나'가 이곳을 가득 채운다.


그들은 모두 조용하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마치 말하고 싶은데 입을 열 수 없는 것처럼.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그중 하나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