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열리는문

by dy


딸각-


그 소리가 울린 순간, 내 주변의 모든 '나'들이 동시에 멈춘다.

움직임이 사라지고,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공간 전체의 공기가 숨을 참는 것처럼 굳어버린다.

상자 속의 나도, 이곳을 가득 채운 그림자 같은 나들도 모두 그 소리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그 방향엔 아무것도 없다.


문은 보이지 않는다.

문틈도, 손잡이도, 경첩도.

그저 어둠과 윤곽만 있는 이 공간의 어디에도 문이라 불릴 만한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이 열린 소리는 분명했다.


딸각-


다시 한번, 이번엔 조금 더 가까이서.


공간의 일부가 주름처럼 접히며 어둠 속에 얇은 금이 생긴다.

그 선은 처음엔 이빨처럼 작고 뾰족하지만 순식간에 길어진다.

그리고 그 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문이 열리고 있군."


묻는다.

"여기에도... 문이 있는 거야?


그 형체가 고개를 천천히 젓는다.


"여기엔 문이 없다."


그럼 지금 보이는 빛은 무엇인가?


질문을 이어가려는 순간, 주변의 수십, 수백의 '나'들이 하나둘씩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 속삭임은 소리가 아니라 귀 뒤쪽을 간질이는 느낌처럼 다가온다.


"바깥에서... 누군가 들어오고 있어."


바깥? 여기가 내부라면, '바깥'은 현실인가?

문처럼 보이는 균열을 바라본다. 점점 넓어진다. 빛이 아니라- 하얀 소음이 새어 나온다.


일종의 씩- 하는 방송 끊긴 화면 같은 소리. 그 소음 속에 말이 섞여 있는 듯한 잔향이 있다. 누군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상자 속의 나가 내 옆에 다가온다. 그리고 그 차갑고도 묘하게 익숙한 손으로 내 어깨를 짚는다.


"저 문은 너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럼 누구를?"


그 형체가 공간 안을 휘둘러 본다.

수많은 '나'가 있는 방향이다.


순간 깨닫는다.

지금 여기 있는 나들은 내가 버린 것들이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가능성들'이었던 것을.

그들의 눈이 새어 나오는 빛을 향해 일제히 움직인다.

동시에 그 하얀 소음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 들리나 ...? ... 거기 있어 ...?"


누군가 간신히 신호를 잡아 말하는 듯한 목소리, 멀리서부터 수면을 뚫고 오는 듯한 울림.

본능적으로 물러난다.


"누...구지?"


그것이 대답한다,


"너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너였다가, 너가 아니게 된 자."


그리고 이 말과 동시에 균열이 전부 열리며 하얀 소음으로 둘러싸인 어떤 '형체'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 형체는 흔들리는 빛과 노이즈로만 이루어져 있어 얼굴도, 윤곽도, 움직임도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직감한다.

저것은 나다.

내가 잃어버린 또 하나의 가능성, 혹은 내가 외면한 어떤 과거, 아니면 내가 도망쳤던 미래.


형체가 완전히 들어오자 주변의 수백의 '나'들이 동시에 뒤로 물러난다.

그들은 한 목소리처럼 속삭이다.


"그는... 돌아왔다."


빛의 형체가 나를 향해 손을 쭉 뻗는다.

하지만 그 손은 나에게 닿지 않는다. 대신 상자 속의 나를 향한다.


하얀 소음의 틈새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너... 나를... 놓고 갔지..."


그리고 공간 전체가 처음으로 진짜 공포라는 감정으로 진동했다.

그 목소리에는 지독할 정도의 원망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