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륙 일기

효녀와 효년 사이

중국에서 함께 보낸 열흘을 기억하며

by 칸초

5월 초 명기 씨와 경애 씨가 서안에 다녀갔다. 머리 다 큰 자식과 부모가 무려 10일 간을 붙어있었으니 하루하루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씻은 듯이 아름답기만 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탑노트 - 미들 노트 - 베이스 노트를 켜켜이 쌓아 때마다 다른 향이 나고 마지막에는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향수같이, 추억도 비슷하게 발향하나 보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향기는 사랑이다. 짜증 나기도, 서운하기도, 부쩍 늙어버린 부모님의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 끝에 남은 것은 내리사랑이었다. 아무리 지속력이 높은 향수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모두 날아간다. 마찬가지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을 쓴다.




- 탑 노트: 쨍하게 톡 쏘는 짜증


어떤 질문을 하든 AI가 10초 안에 답변을 주는 세상이다. 하다 못해 이제는 옛 것으로 치부되는 초록창에 검색만 해도 친절한 블로거의 게시글을 열 개쯤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부모님은 왜 항상 나만 찾는 걸까. 세 달도 더 전에 비행기 표를 사두고는 시시때때로 로밍은, 환전은, 입국 신고서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대는 통에 솔직히 귀찮음이 앞섰다.


9개월 만에 뵙는 부모님 얼굴이 반가운 것도 잠시, 이미 수 차례 공유한 일정을 묻고 또 묻는 아빠에게 제발 예전에 보낸 메시지 좀 보라며 화를 냈다. 그런데 더 이상 마주칠 손바닥이 없어 소리가 나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또 말해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렵냐며 같이 화를 내었을 텐데, 지금은 풀이 죽어서 내 잔소리를 듣고만 있더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시가 다 빠져버린 고슴도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들 다 키워 내보내고 이제는 보호할 대상도 싸울 일도 없어서일까. 고슴도치 부부는 이제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핑크빛 맨살로 세상을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소박한 것에도 기뻐하고, 사소한 일에 지레 겁먹기도 하면서.



- 미들 노트: 석류꽃, 시골 오이, 효도산의 공기


5월 초는 마침 석류나무 꽃이 만개할 때였다. 눈을 돌리면 어디든 석류나무가 있고 가지마다 주홍빛 열매와 꽃송이를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사진 찍어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엄마인데, 석류나무 아래에서는 꼭 포즈를 취하곤 자기를 찍으라고 했다. 알알이 여물어 갈 석류 열매가 눈에 선해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작디작은 꽃송이 하나도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편 아빠가 손에 꼽는 중국의 미식은 오이다. 오이?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진초록 빛깔의 길쭉하고 단단한 그 채소가 맞다. 어느 식당에 갔을 때 후식으로 내어준 중국 오이를 먹어보고는 어렸을 적 시골에서 먹던 그 오이 맛이라며 한 입에 반해버린 것이다. 이후론 오이가 보일 때마다 사서 가방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다. 각종 음식을 맛보느라 쓴 돈이 무색하게도, 아빠는 아마도 2025년 5월의 서안을 떠올리면 혀 끝에 오이 향이 날 테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화산華山에 갔다. 무협 소설 속 '화산파'본거지로 묘사될 만큼 험준한 산세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런데 가이드 님 말씀을 들어보니 험상궂은 모습과 사뭇 다르게 '효도산'이라는 별명도 있단다. 그 이유는 첫째로는 선녀의 신분으로 인간과 사랑에 빠진 벌로 산 밑에 갇힌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그 아들이 칼로 내려쳤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바위가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옛날 어느 조정의 관리가 화산에 왔다가 절경에 반해 그 길로 고향에 가 노모를 모시고 다시 왔다는 일화가 적힌 비석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듣더니 부모님이 나도 우리 딸 덕분에 화산에 왔다고, 이 비석이랑 기념 사진을 찍어야겠다며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스레 마음이 찡했다. 언제나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으로는 갚을 수 없는 큰 마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사람들에게 부모님이 열흘씩이나 서안에 온다며 너무 피곤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고 괜히 짜증만 내던 나의 모습과, 시간이 날 때마다 연신 이번 여행을 함께 해 주어 고맙다고 말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래서 자식은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까지 그 사랑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나 보다.



- 베이스 노트: 엄마 손맛, 내리 사랑


눈 깜짝할 새 시간이 흘러 마지막 일정으로 부모님을 공항에 모셔다 드렸다. 유학이다 파견이다 뭐다 항상 한국을 떠나는 나를 부모님이 배웅해 주시곤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한국으로 떠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는데 어쩐지 조용한 공기가 어색하다. 보지도 않으면서 아리랑 티브이 뉴스는 배경 음악처럼 항상 틀어두던 엄마 아빠였는데. 마음이 허한 건지 속이 허한 건지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마음이 찡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일정 중간에 잠시 출근한 틈을 타서 둘이 장을 봐다가 냉장고를 채워두고 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각종 과일이며 요거트며 한국에서부터 싸 온 밑반찬까지, 빈틈없이 냉장고를 차지한 그 모든 것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중국어도 못하는 둘이서 용감하게 마트를 휘젓고 다니며 부지런히 먹거리를 담았을 생각을 하니 웃기기도 하고 또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이렇게 바보야, 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맛있는 게 있으면 실컷 먹고 갈 일이지 이렇게 잔뜩 쌓아두고 갈 건 뭐람. 난 당분간 계속 중국에 있을 사람인데. 제든 내가 사 먹을 수 있는데.


이렇게 끝까지 나는 효녀와 효년의 경계에 있었다. 그런데 내심 한 가지 뿌듯한 것은 이번에 함께 보낸 시간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언제까지고 내 마음 속에 남아, 나중에 부모님을 추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오거든, 내게 은은한 위로의 향기를 건네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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