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 지역 여행기
우루무치에 도착한 날부터 존재감을 뽐내던, 이번 여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톈산 산맥. 6일차에 또 톈산 산맥의 한 자락 싸이리무호赛里木湖에 왔다.
'싸이리무'는 몽골어로 '산등성이에 위치한 호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말대로 산을 굽이굽이 오르자 구름 아래 펼쳐진 호수가 나타났다. 그럼 저번에 갔던 천산천지와 똑같은 거 아니냐고요? 그 질문에는 규모가 감히 천지 차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왜냐면 싸이리무 호는 정말 시야의 끝까지 닿아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반나절로는 아무리 서둘러 걸어도 채 둘러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차로 이동하다가 괜찮은 장소가 보일 때마다 멈춰가기로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차를 세울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어김없이 웨딩사진을 찍는 신랑 신부가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제법 차가워진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홑겹의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으로 촬영을 하는 커플 1, 2, 3......+@호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감정은 조소에 가까운 것이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가 무수히 봐 온,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비슷한 차림과 자세로 찍어낸 판화 같은 사진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요즘 유행은 제주의 해변에서 일몰 즈음에 검정 드레스를 입는 것 같다.) 그렇게 얻은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과 그보다 더 반짝이는 행복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어디든 아름답고 좋은 장소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그 마음을 표현하는 양식이 좀 비슷할지라도 뭐 어떻겠는가.
7일 차에는 우루무치로 돌아가는 길에 '끼워넣기'로 들르는 듯한 관광지에 갔다. 바로 독산자 대협곡独山子大峡谷이다. 촛농이 흘러 굳은 것 같은 기다란 세로홈은 톈샨 산맥에서 흘러나온 강물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톈샨 산맥이 여기까지도 손을 뻗치고 있다.
딱히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어서 나름 구색을 맞추려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두었다. 여기서는 롯지를 타거나, 아이스링크장에 가거나(?), 유리 다리로 협곡을 건너는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추가 비용을 치르고 따로 티켓을 사야 한다. 생각 같아선 그저 카페에 널브러져 있고 싶었지만, 다들 유리 다리로 간다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다리 밑으로 투명하게 보이는 협곡 바닥이 신기하긴 했지만 특별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 위에서 외줄 타기 공연을 펼치는 사람이었다. 베테랑이라기엔 앳된 얼굴과 대기 중인 엉거주춤한 뒷모습에서 그의 경력이 그리 길지 않음을 짐작했다. 그러나 막상 공연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자, 긴 장대를 들고 줄 위로 성큼 올라서는 동작에 망설임이 없었다.
줄 밑으로 많은 이의 시선과 목소리가 소란스럽다. 게다가 붉은 천을 묶어 두 눈을 가렸다. 어떻게 저 상황에서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발 한 발 뒤꿈치부터 밀어 내딛는 걸음은 춤을 추는 듯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아마도 그는 수없이 떨어지고도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다독이곤 다시 줄 위에 올랐을 것이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 건 내 몸의 무게'라던 루시드 폴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그래 어쩌면, 나를 흔드는 것은 바깥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있음을 아는 것, 그 덤덤함이 줄타기의 첫걸음인지도 모르겠다. 비단 줄타기뿐만은 아니다. 가끔 마음이 주책없이 나부낄 때면 그 바람이 나에게서 불어오고 있음을 깨닫고 그저 문진 툭 내려놓는 사람이고 싶다.
일정을 마치고 우루무치 시내로 다시 돌아오자 여행을 잘 마쳤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제 남은 것은 신장 박물관을 관람하고, 공항으로 이동해 서안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신장 박물관이 유명세를 탄 것은, 아마도 전 세계에 딱 여기에만 있을 특이한 소장품(?) 혹은 소장인(?) 때문이다. 그것, 아니 그는 바로 미라다. 이집트의 미라와는 다르다. 이집트에서는 시신을 보존할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방부 처리를 한 것이지만, 신장 지역의 미라는 건조한 기후 때문에 매장된 시신이 자연적으로 미라가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그래서 전자와 후자를 구분하고 후자는 간시干尸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간시干尸를 보러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다른 전시관은 한산하기만 한데 유난히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이 있는데, 인파를 따라가면 그 끝에 있다. 궁금한 마음 반, 어쩐지 께름칙한 마음 반, 갈팡질팡하다가 빼꼼 들여다본 간시干尸는 생각보다 더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기 간시가 한 구, 이어서 할아버지, 여자, 모두 살아생전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터다. 그러니 그리 정성스레 시신을 싸고, 부장품도 넣고, 묘를 만들어주었겠지.
사후 세계를 믿는 편이 아닌데도, 유리관에 둘러싸인 채 셔터 세례를 받고 있는 그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에 진짜로 영혼이 있어서, 무덤이 파헤쳐진 것 때문에 편히 쉬지 못하고 여기 묶여있는거면 어떡하지.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어줄 표본 1과,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사람 한 명. 고고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 가까운 후손도 아닌 나는 어느 것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죽음 뒤에는 암흑만 있을 뿐이라고 믿으련다.
이 여행기는 지난 9월(벌써 6개월 전이다)의 기억을 더듬어 썼음을 얘기해 두어야겠다. 세세한 부분의 기억이 휘발되어 여행기를 쓰면서 몇 번이나 사진첩을 들여다보아야 했지만, 동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과 감정은 더욱 진하게 졸여진 느낌이었다.
김치도 왜 겉절이의 맛이 있고 또 묵은지 나름의 맛이 있지 않은가. 이번 기회로 뇌장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묵은 글감을 자르고, 달달 볶아내고, 바글바글 끓여서 제법 맛이 나는 여행기로 풀어낸 것 같아 후련하다. 9박 10일간의 여행이었지만 의식에서 사라진 부분은 과감하게 편집하였음은 너그러이 눈감아 주시길. 그럼 저는 다음 중국 방방곡곡 (자유) 여행기로 돌아오겠습니다.
FIN.
알알이 포도를 여물게 한 햇살과 톈샨 산맥을 뒤로하고 신장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