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륙 일기

차 타고 신장新疆 속으로 (2)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 지역 여행기

by 칸초


3. 기다리지 않는 마음


다시 밝아 온 3일 차 아침. 어제 5시간을 달려왔지만 또 5시간은 더 가야 사막을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은 어제의 종착지였던 이곳을 새로운 출발지로, 또 경유지로 삼아 허무촌禾木村으로 향한다.


높낮이만 달라지는 황토색 풍경이 지겨워질 무렵, 서서히 그리고 미묘하게 변화가 느껴졌다. 이제는 도로 옆으로 양과 염소가 출몰하기도, 군데군데 푸릇한 풀이 돋아 있기도 하다. 드디어 사막지대를 벗어난 모양이었다. 좀이 쑤시는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기사님이 길가에 차를 세우곤 잠시 바깥바람을 쐐자고 한다. 덕분에 도로 한가운데서 사진을 찍는 호사도 누렸다.


도로 앞에는 푸른 물이 펼쳐져 있었다. 음~ 짠내가 나네~ 음~ 갈매기가 날아다니네~ 하다가 생각해 보니 신장 지역은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내륙이다. 머쓱하게도 그건 그냥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였다. (그럼 그 흰 새는 뭐였을까?) 드넓은 물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멋대로 착각을 만들어내다니, 인간의 인지 능력이란 참으로 모지란 듯하다.


다시 차에 올라 길을 재촉한 끝에 허무 마을에 다다랐다. 오늘 한 것이라고는 차창 밖으로 변하는 풍경을 지켜보다가 까무룩 잠든 것,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내려 저녁을 먹은 일 밖에는 없다. 하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정상에서 떨어지는 아찔한 순간을 위해 먼저 천천히, 한 칸씩 올라가도록 설계된 롤러코스터처럼, 좋은 것을 누리려면 그 앞단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루한 일과 속에서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만을 기다리고, 여행 중에는 또 가장 유명한 풍경과 맛있는 것을 음미하는 순간만을 기다린다. 이렇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보단 내가 마주하는 매 순간을 즐기고 싶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4. 신비롭고 아름다운 카나스


허무촌 안의 통나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전날 즐기지 못한 곳을 마저 둘러보려 새벽 산책에 나섰다. 서서히 올라오는 해의 붉은 기운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까맣고 하얀 개가 나타나 꼬리를 흔들었다. 아는 체해주자 더욱 신나서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앞서서 걷는다. 함께 풀숲을 헤치고 가다 보니 넓은 초원이 나왔다.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작은 생명체와 나란히, 풀을 뜯는 말을 바라보던 이때가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전생에 양을 치던 유목민이었나 보다.



아쉽게 얼룩이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 빈 속을 토마토 계란 탕면으로 든든하게 채우니 또 하루를 시작할 힘이 난다. 오늘의 목적지는 카나스喀纳斯 풍경구다.


'카나스'는 몽골어로 '아름답고 신비한 호수'라는 의미라고 한다. 실제로도 옥빛의 물과 노랑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빡빡한 패키지여행 중 모처럼 긴 자유 시간이 주어져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초등학생 둘을 벗어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을 바라본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


내향인은 동족을 파악하는 레이더가 잘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혼자 카나스 국립공원을 휘젓고 다니던 중 로열 블루색 목도리를 두른, 어쩐지 망설이는 듯한 눈빛을 가진 이가 눈에 띄었다. 단풍과 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셀프 카메라로는 구도가 영 안 나오는 눈치였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이지만 어쩐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사양하더니 오히려 나를 예쁘게 담아주었다.


흠, 괜히 작고 연약한 내향인을 괴롭힌 건 아닌가 미안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다른 장소 혹은 시간에서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 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몇 마디 밖에 나누지 못한 대화 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를 인연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아니면 신비로운 카나스의 마법일까?


이 날도 이만 보는 족히 채우고 숙소에 도착해선 그대로 뻗었다. 물론 잠들기 전 신장에서 특히 맛있다는 양꼬치를 배달시켜 배불리 먹는 일은 잊지 않았다.




5.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세요


어제 갔던 카나스는 신장新疆의 북단에 위치한 곳이었고, 오늘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커라마이克拉瑪依시 우얼허烏爾禾구로 이동한다. 다시 흙과 돌 뿐인 황량한 지형을 지나 마귀성魔鬼城에 도착했다. 이곳은 모래밭에 다양한 모양의 암석이 솟아나 있는 곳인데, 과학적으로 말하면 아단지모(雅丹地貌, 지표면에 노출된 기반암이 풍식작용을 받아 형성되는 지형)라고 한다.


이를 알 수 없었던 옛사람들은 이곳을 신비롭게 여겼고, 암석 사이 계곡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 소리가 날 때면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각종 신화와 괴물의 탄생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해석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담겨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파도가 갑자기 거칠게 일어나는 것에서 바다의 신이 노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사계절이 반복되는 이유를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에게서 찾는 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상상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온 기둥이 아닐까.


이곳에서도 역시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전 세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거북암'을 비롯하여, 암석마다 가지각색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타이타닉 암석, 개선장군 암석, 사자 머리 암석 등 어딘가 2% 씩은 엉성한 모양에서 그 이름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도, 혹은 내 맘대로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상상의 영역이다.


나는 한참을 걸어 관광객이 뜸해질 즈음, 화성에 고립된 연구원이 된 상상을 해 보았다. 나는 좇됐다. 앞으로 남은 식량은 감자뿐이고, 로켓을 개조해 탈출을 도모해야 하는데....! 하던 와중 가이드의 전화가 울린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고 얼른 나오란다. 어쩔 수 없이 관광객 1의 신분으로 돌아간다. 쳇.


돌아가는 길 셔틀 정류장에서 씨벅톤 seabuckthorn 주스를 팔고 있길래 사 보았다. 무엇인지 몰라 검색해 보니 산자나무 혹은 비타민 열매 라고 한다. 정말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그래서 어떤 맛이냐고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십쇼.







(3)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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