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으로도 살아갈 수가 있지
오늘은 솔직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나도 꽤 좋은 사람일지도? 했던 얄팍한 믿음이 지금은 내 안에 한 톨도 남아 있지가 않다.
애써 아닐 거라며 텅 빈 속을 박박 긁어보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속이 쓰리지만 인정해 본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 못 된다. (아닌가?) 밑바닥을 다시 들여다보니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은 몇 톨 남아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해낼 수 있고 없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청소년기에 진작 끝낸 줄로만 알았는데 스킵한 것도 있나 보다. 이따금씩 삶이 문제를 마저 풀라며 들이미는데 여전히 헷갈리고 어렵기만 하다.
혼자일 때의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고고하게 존재하기가 쉽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는 이리저리 휩쓸리느라 벅차서 날 것의 모습이 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어렵다. 쉽게 화를 내고, 마음을 다친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일까?
다른 이를 햘퀴는 내가, 평정심을 잃은 내가 싫어서, 그럴 때면 머릿속으로 수박이 아스팔트 바닥 위로 떨어져 으깨지는 장면을 재생하곤 한다. 그렇게 부서져 사라지고만 싶다.
하루는 중국어 과외를 받는데 예문으로 이런 문장이 나왔다. "동물은 흔히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인간보다 나은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자는 어제 놓친 사냥감을 아쉬워하지 않으며 지금 눈앞에 있는 먹이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후회해야만 한다. 뱉은 말을 곱씹는다. 같은 상황이 온다면 다시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부서진 마음도, 관계도 깨지기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 세계의 물리법칙 상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지 않은가. 대신에 진심이라는 접착제로 어설프게나마 이어 붙이기를 택한다.
그러니 후회로 인해 —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 혹은 노력 때문에(덕분에?), 사람은 '사람'일 수가 있다. 알고 보면 다들 얼기설기 부서진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좋은 사람아니고 그냥 사람일 뿐인, 접착제 범벅인 나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
수없이 허물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인 것 같다.
<산산조각>
- 정호승 -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