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를 좋아하세요?
요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Golden'을 커버한 영상이 자주 올라왔다. 하나씩 보다 보니 다들 가창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노래 중간에 숨 쉬는 소리가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노래를 '잘'하는 것에는 호흡을 멈추고 쉬어가는 것까지 포함되는구나.
수영을 할 때에도 어느 순간에는 숨을 멈춰야 물을 먹지 않을 수 있고 하물며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띄어쓰기 없이는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이지 인생에 스페이스 바 한 칸씩의 여백은 필요하다.
요즘 내가 즐기는 여백은 '차(茶)'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또 마시려는 찻잎에 따라 적당한 온도로 물이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 마침내 물을 붓고 나서도 찻잎이 열리고 우러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찻자리를 만드는 순간부터 내 몸은 '쉼'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같은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휴식의 질이 좋다.
또 한 가지 장점은, 시간을 낭비한다는 불안을 덜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차를 마실 때는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주전자를 기울이는 손이, 수색을 살피는 눈이, 향기를 맡는 코가, 데워진 잔의 온도를 느끼는 입술이, 맛을 느끼는 혀가 바쁘다. 내가 지금 너무 한량인 건(?) 아닌가 하는 자기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생에 여백을 가지자면서, 시간 낭비를 운운하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바쁨'에 중독되어 있다. 생산적인 행위가 옳은 것이고 게으르게 흘려보내는 시간은 어쩐지 틀린 것 같다. 주위를 보면 직장에 다니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또 그 시간을 쪼개어 외국어 공부를 하고, 다시 또 시간을 쪼개 부업까지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면 혼자 뒤처질까 불안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나는 여백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바쁜 일상이 휘몰아치다가 갑자기 휴식 시간이 찾아올 때면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공허한 기분이 되곤 했으니까. 아마도 그래서 차를 마시는 시간에 그리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유를 음미할 수 있으면서도, 무의미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한 때.
최근 친구와도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봤을 땐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그는 스스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바쁘기를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이미 신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지쳐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다고. 그 친구를 보며 사람마다 지닌 여백의 비율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자간이 너무 빽빽한 글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피곤해진다.
그러니 그 친구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인생의 여백을 어떻게 배치할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찻자리는 혼자 즐겨도 좋지만, 좋은 친구와의 담소를 곁들이면 더욱더 좋더라고. 언제든 원한다면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기다리겠다고.
그래서 말인데, 차茶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