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소장 Oct 26. 2022

싸고 좋은 집 단상

건축가의 수필



건축업계 오래된 거짓말 하나로 싸고 좋은집 지어드립니다, 가 있다.

반면 건축업계 오래된 진실 하나로 싸고 좋은 집은 없다, 도 있고. 

아마 모든 건축주들은 싸고 좋은 집을 꿈꾸지 않을까. 물론 쉽지 않음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인정하면서도 왠지 내 집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게 또 사람 심리.

싸고 좋은 집을 말하는 건축주들에게 예전엔 그런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거나 (그런게 있다고 믿게되면 나중에 이상한 업자 만나 당하는 경우가 많으니) 죄송한데 나는 그런 재주 없으니 다른데 가서 알아보시라고 했다. (솔직히 그걸 원하는 건축주도 한심하고 그걸 해준다는 업자들도 어이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내 집 지어보고 한 5년 살아보고, 그 사이 남의 집 서른채 가까이 짓고 설계하다보니 그런 허튼(?) 꿈을 갖는게 심정적으로 이해되고 그게 진짜 불가능한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싸고 좋은 집을 가능하게 하는 시작점은 일차적으로 그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좋은 집'의 기준을 뭐로 잡느냐에 달린게 아닐까. 잡지나 인터넷에서 본 매트한 인테리어와 칼같은 고급 마감의 평당 1500만원 짜리 집들을 보며 눈높이가 높아진 상태에서 말하는 좋은 집이란 비용이 받쳐주지 않을경우 그림의 떡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집들의 사례와 사진을 보여주며 저거랑 비슷하게, 대신 싸게 해주세요....하는건 물건으로 치면 해외유명 브랜드의 중국산 짝퉁을 만들어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 예산과 안맞는 집을 짝퉁 물건 만들듯 만들다간 살면서 마음고생이 끊이질 않게 된다.

그러면 싸고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좋은 집의 기준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일단, 내가 쓸수 있는 가용 예산에 맞는 집의 규모과 자재, 시공법 수준에 만족하고 대신 그 수준 안에서 최대한 좋은 디자인을 통해 가성비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당연히 전문가의 가이드, 제안이 필요하다. 

단열, 방수, 골조와 관련된 성능과 직결되는 부분에선 비용을 아끼지 않도록 하고 믿을 만한 건축가의 설계와 감리를 통해 적정한 자재와 예산내에서 가능한 시공 품질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벽돌 마감이라면 하자 구조를 잡아주는 부분은 반드시 아연철선을 쓰고 내진에도 견딜수 있는 벽돌 속 앵커링 작업도 표준 시방 기준으로 신경써야하고, 필수 자재 등급 역시 중간급이냐 상급이냐를 다른 비용 항목과 겹칠때 어디에 돈을 집중해야 하는지 등등의 예산 배분도 설계 과정을 통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성비의 집짓기를 원할 경우라면 더더욱. 

예산이 한정적이라는 것은 이런 선택지마다 둘중 하나, 혹은 셋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걸 의미한다.

둘 혹은 셋 모두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꼭 허접한 집, 성능에 문제 있는 집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싸고 좋은 집의 의미는, 기본 성능과 기준은 지키면서 고를수 있는 마감에서 가성비 있게 경제성을 고려한 방향으로 지어진 집을 말한다.

방법을 찾는 다면 주어진 비용에서 적정 예산으로 가능한 집짓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아낄 곳과 쓸 곳을 구분하지 못하고 배분이 잘못된 방향으로 설계를 하거나, 한번 짓는 집 여한 없이 하자는 식으로 비용과 안맞는 집짓기를 하게 되면 큰 돈 쓰고도 애매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성능 유지하며 격 갖춘 집을 큰 돈 들이지 않고 짓는다는 건 원가 상승을 유발하는 재료, 디자인, 시공법 체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 고안하고, 해야할 거 안할거 구분하는 설계 해법이 동반되야 가능하다. 비용 이슈를 설계 단계부터 충분히 검토하여 집짓기를 시작하는 것이 싸고 좋은 집짓기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설계에서 그런 검토 없이 싼 비용을 맞추려면 자재가 하염없이 싸구려가 되거나, 정상적 시공단계 한두개 건너뛰며 짓거나, 추가 공사비에 고민하는 상황도 생기게 되고..

집짓기를 구상중이라면 처음 건축가를 정할 때, 설계 이후 시공사를 정할때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시행착오 줄이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큰 건물이든 작은 집이든 건축은 처음 부터 끝까지 돈과 이상 사이의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다. 어떤 타협점을 만들 수 있는지에 따라 결과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작가의 이전글 말과 돈, 그리고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