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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온기 이야기 #1

주택 설계 다이어리

by 최소장

가끔 건축주들이 궁금해하신다. 설계할 때 무슨 생각 하냐고.

그게 왜 궁금하시냐 물으면, 무슨 생각을 하면 저런 집이 나오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고.


그래서 궁금할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 작업 했던 주택들

몇개를 골라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나... 한번 의식의 흐름데로 편하게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온기가 그 첫번째 집일듯 싶은데,


일단 온기를 설계할때 나름 혼자서 건축주 몰래(?)

진지하게 생각 했던 이 집의 테마는 ' 혼자만의 공간' 이었다.


물론 나 혼자 없던 생각이 떠오른건 아니었고 첫 미팅에서 건축주 부부께서

두 아이를 위한 각각의 독립적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하신게 힌트가 되었다.


그 힌트가 지금의 온기를 만든 생각의 산파였다.


주택 작업하는 건축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집을 만들어가는지

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지금부터 틈나는데로 연재로 풀어보려하니

편하게 공감, 소통 해주시면 좋겠다.




버지니아 울프의 집과 방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을 혹시 아시는지. 난 소설가의 ‘소설’ 보다는 소설가가 쓴 산문을 좋아하는 취향인데 이유라면 산문이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작가의 실제 성격과 사고방식이 더 날것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랄까. 생각의 교감이나 좀 더 직접적인 친밀감이 중요한 독자들이라면 대체로 그럴거라 생각하지만, 독서의 목적을 글쓴이와의 감정적 소통에 두는 나 같은 사람에겐 좋은 산문을 만나는 시간이 마음 잘 통하는 친구와 만나는 것과 정서적으로 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사 전체로 볼 때 <자기만의 방>은 여성의 창작적 자유를 주장한 선구적인 작품, 이라고 모 평론가는 유튜브에서 이야기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제한되던 조금 답답한 빅토리아 시대였으니까 뭐 그럴수도... 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내게 단순히 남존여비나 19세기말 20세기초 전환기의 시대상을 넘어서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조금 거창할수 있지만 내게 이책은 ‘방’에 대한 최초의 현대적 고찰이다.


그 시절 영국 여성이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 여성은 내 공간을 갖지 못하고 가족 모두의 공간인 거실과 주방 사이를 오갔다. 울프는 집 안의 ‘방’을 단순히 벽으로 둘러 쌓인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내 생각의 자유를 지켜주는 정신적 울타리로 이해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게 바라는 뻔한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방문을 닫고 혼자 있을 권리‘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중산층 남성들은 누구나 서재가 있었다. 책을 읽던 안 읽던 남성의 서재란 나만의 고유한 공간을 의미했다. 한 개인으로서의 자유, 독립적 자아와 주체성, 여성과의 상대적 계급의 보장... 등등 다층적 의미였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원했던 방은 남성과 가족으로부터 나의 실존을 보호하는 심리적 안전지대였다. 의지와 상관없이 늘상 서로 부대끼며 혼자만의 시간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집‘은 그녀에게 더는 의미가 없었다.


울프의 산문을 읽다보면 좋은 집이란, 다락이든 헛간이든 비밀의 방이든 지하실이든 아니면 집 바깥에 별채로 지은 작은 오두막이든 간에 내가 원할 때 거추장스러운 시선과 간섭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문을 닫고 혼자 있을 권리란 고독과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킬 수 있는 권리.


공교롭게 울프의 글은 가스통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집을 묘사했던 대목과도 맥락이 묘하게 닿아있다. ’ 집은 몽상의 보금자리, 몽상가의 은신처이며 평화롭게 꿈꾸도록 나를 돕는 공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바슐라르가 묘사한 몽상가의 은신처는 결국 같은 공간이다.


온기의 설계가 막 시작되던 즈음, 난 조용하고 독립적 일상을 원하는 이 가족에 어울리는 집 역시 아마 울프나 바슐라르의 공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했던것 같다. 그리고 짐작은 이후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설계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온기준공사진 : https://naau.kr/WORK/view/497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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