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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온기 이야기 #2

주택 설계 다이어리

by 최소장
가족과 개인


가족이 화목해야 좋은 집 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은 겉으로는 별 문제 없어보여도, 중요한게 하나 빠져있다. 그것은 가족이기 전에 우리 모두는 독립적 ’개인‘ 이라는 사실.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가족의 부분으로 개인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자존감이 가족의 뿌리라는 걸.


새로운 단독주택 설계를 시작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공간’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왔다. 거실을 어떻게 배치할지 주방과 식탁을 어떻게 연결할지, 모두가 함께 하는 공간을 위해 채광과 환기는 어떤 방식이 좋을지... 가족은 한데 모여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고정 관념 속에서 나온 질문들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질문도 던져본다. 가족과 부대끼지 않는 개개인의 은신처는 필요없는 걸까. 집에 그런 공간까지 둘 여유가 있을까.


‘개개인의 은신처’ 에 대해 우리가 덜 고민하거나 자주 쓸데없는 생각으로 치부하는 이유는 한정된 땅 크기, 한정된 돈, 그에 맞춘 집 규모라는 현실적 한계를 늘 신경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애써 그것이 공간 낭비인 양, 내 집이라는 틀 속에서 가족 개개인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따로 고립되는 것은 뭔가 비윤리적이고 불편하며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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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의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고독과 외로움을 찾게 되는 정서적 갈증을 자주 외면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형태와 내용 모두 충만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고독하게 돌아보고, 사유하고,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가족과의 관계도 더욱 원만해지지 않을까. 스스로 원할 때 ‘혼자’가 될 수 있는 삶은 단순하고 심심한 삶, 외로운 삶과는 전혀 다르다. 고독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고, 그런 외로움은 불행이 아니라 내적 만족감을 준다.


동탄 주택 ‘온기’를 설계할 때 남편 L씨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는 최승자의 산문을 좋아하고 혼자 작은 방에 틀어박혀 공상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다만 모든 가족이 다 그렇듯 온기 역시 한정된 돈과 그에 맞춘 집 규모라는 현실에서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L씨와 달리 그의 아내는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만의 정원’에 진심이었고(하지만 정원 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두 아이에겐 넓직한 침실과 함께 각 침실 앞에 작은 전실을 두어, 자는 공간과 공부하는 공간을 분리해주고 싶어했다. 이런 와중에 L씨를 위한 몽상의 은신처가 들어갈 자리가 과연 있을지 난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L씨가 따로 요청한 공간이 아니었음에도.


집 어딘가에 나를 위한 작은 아지트가 있다면 우리는 집을 통해 나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이나 바슐라르의 은신처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정신적 자유와 꿈을 키우는 장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원초적 나와 만나고, 읽고, 쓰고, 생각하며, 때론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며 감상에 젖기도 한다. 집이 가족 모두를 위한 온전한 쉼터가 되는 건 편안한 가죽 소파나 넓고 밝은 거실 때문 만은 아니다. 작더라도 나를 위한, 조용한 구석 한 칸이 있을 때 비로소 집은 나의 좁은 내면을 세계로 확장하는 시작점이 된다.


‘온기’의 설계는 L씨를 위한 작은 은신처를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면서 집의 전체 윤곽이 풀려나갔다. 그 은신처는 천정 높은 서재일 수도 있고 아늑한 다락방일 수도 있고, 테라스를 맨발로 총총 뛰어가야 하는 별채일 수도 있었다.


좋은 집은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이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가족으로 불리기 전 부터 나였다. 우리에겐 온전한 나로 웅크리고 있을 나만의 여백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온기' 를 설계 할때 난 그 여백을 적절히 둠으로서, 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매일 조금씩 새로 태어날수 있다고 믿었다. 먼저 온전한 '내'가 되어야 ‘바깥’과도 건강하고 친절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온기준공사진 : https://naau.kr/WORK/view/497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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