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남겨준 것
20살의 3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전혀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고, 같이 살았던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이 없을 뿐이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나에게는 엄마가 곧 아빠였다.
아버지를 보내면서, 대학생활을 맞이했다. 꽤나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정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머릿속에 아버지를 소환하기 시작한 건 졸업을 앞두고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의 나는 아직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고 인간관계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식당일을 하는 엄마의 몸은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수험생이라는 신분은 애초에 조급한 마음이 찾아간 도피처였던 것같다.
그렇게 나는 공부를 핑계로 휴학 후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나만의 세상에 흠뻑 젖어들었다. 혼자가 된 이후, 매 순간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초라한지 매일 되새겼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내려고 아득히 먼 옛날의 기억까지 빠짐 없이 잘근잘근 곱씹었다. 그러다보니 환경 탓을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생겨났다. 그 때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가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해 가족을 고생시켰던 아버지가 원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딸조차 슬퍼하지 않았던 그 죽음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늦둥이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어서, 결혼한 형제들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다고 한다. 희망했던 대학교에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친척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엄마와는 연애 없이 맞선으로 바로 결혼했다. imf로 빚쟁이가 되었고, 덕분에 보증을 쓴 엄마까지 신불자가 되었다. 교육자의 꿈을 이루지도, 사업으로 성공하지도 못했다. 늘 도망치는 신세라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혼자 살았고, 아무도 임종을 못 지켰고, 장례식장에서 딸은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았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늘 엄마의 원망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어딘지 초라하고 외로운 인생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인생을 회상하면서 원망과 동시에 불안감 같은 것이 밀려 왔다. 나는 아버지와 너무 비슷했다. 유한 듯하지만 사실은 고집불통인 성격도, 악바리 근성이 없어서 쉽게 포기하는 것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머리와 운이 안 따라주는 것도, 주변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버지도 한번쯤은 꿈을 이뤘던 적이 있었겠지? 한번쯤은 불같은 사랑도 해봤겠지? 남들은 다 누리는 거 한번쯤은 누려봤겠지? 비슷한 연배의 교수님들은 노년에 저렇게 존경받으며 여유롭게 사는데 왜 아버지는 저런 인생을 살지 못했을까?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더 못되게 살았어야 했던 걸까? 아버지는 좋은 사람인 걸까 나쁜 사람인 걸까? 나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가졌으니 비슷하게 살게 되는 거 아닐까?
상실감이 시작됐다. 원래 나는 업보라는 걸 믿고 있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거고, 시련이 있으면 그에 걸맞는 행복이 올 것이며, 내가 착실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주고 사랑해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고생을 보상받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바로 내 주변에 있었단 걸 그제서야 알았다. 믿어왔던 것이 무너졌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영광과 명예와 관심 속에서 생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외롭기만 한 사람도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23살, 아직은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밖에 몰랐지만 그곳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타인과의 격차가 비로소 피부에 와닿았다. 출생과 운, 그리고 여러 사소한 변수와 순간순간의 선택이라는 거대한 칼날들이 매순간 우리의 삶을 난도질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잘 빚은 도자기같은 인생을, 누군가는 너덜너덜한 폐가죽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할 때라고, 내 온몸의 세포가 나를 현실로 떠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그리고 다가올 내 인생이 너무 무서워서 매일매일 울었다.
긴 우울의 시작이자 사고회로가 바뀌어버린 전환점이었다. 어쩌면 나만 몰랐었던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삶은 결코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라면, 나는 누구보다 무지한 사람이었고, 이제는 누구보다 나약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나 잘만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장장 5년 동안 허우적댔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도 이제는 무덤덤하게 기억을 떠올릴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이 싹 가셨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아직도 벌벌 떨며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지난 5년의 기억, 그리고 끝을 모르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계속해서 살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