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착해서 좋아."

딱 한번 해본 연애 이야기

by 가문비



아무리 무기력한 성격이라 해도 20살엔 에너지가 남아 돌았던 것 같다. 타지에서 자취방을 구하는 것부터 동아리 홈커밍이랍시고 춤이라는 걸 춰보기까지, 쭈뼛쭈뼛 혼밥에 도전하는 것부터 난생 처음 연애라는 걸 하기까지, 처음 겪는 일 투성이였던 1년 동안 바쁜 나날들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이 마냥 즐거웠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가올 내일이 매일매일 기대됐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남들 하는 건 나도 다 해야 한다는 욕심이 낭낭했던 시절이었고, 어쩌면 그런 욕심 때문에 시작한 연애였기에 나 자신을 베베 꼬아놓을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노잼 인간이었기 때문일까, 연애라는 건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노잼이었다. 의무적으로 연락을 이어갔고, 연락을 하면서도 딱히 할 말이 없으니 “보고싶다”면서 속에 없는 말로 적막을 채우곤 했다. 나보다 5살 많았던 상대방은 이성을 대하는 데 서투른 사람 같았다. 5살 연상에게 은근히 바랬던 리더십을 못 채워준 탓일까, 아니면 나를 열렬히 좋아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심보였을까, 점점 상대에 대한 실망이 쌓여 갔다.


그래도 일단은 노력했다. 평범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연애사업도 무탈해야 했으니까. 그러려면 ‘나답지 않은’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나답지 않게 하트 이모티콘을 보낸다거나, 애교를 부린다거나, 치마를 입는다거나. 그러고 나면 왠지 꼴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20살의 나는 그저 평범하게 세상에 나를 맞춰야 한다고만 생각했기에 모든 걸 좋게 좋게 넘겨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상대방이 말했다. “네가 착해서 좋아.”



상대방이 나를 크게 좋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못 받은 이유를 드디어 찾았다. 착하다는 건 원래 선량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매달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길을 건너는 할머니를 도와주는 그런 것이다. 난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를 착하다고 하는 건 내가 본인에게 기부나 봉사 같은 배려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노력했었나? 20대 청춘이라면 모름지기 연애를 해야 하니까, 5살 연상의 남자친구에게 사랑받는 여자친구여야 하니까, 남들 하는 건 나도 다 해야 한다는 승부욕이 있으니까, 나는 나를 위해 애썼고, 세상에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 노력이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이따금 현타를 맞아가면서까지 나를 우스운 꼴로 만들었던 건 누군가로부터 “고분고분”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착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 사람들이 예리해질수록 공공연해지는 사실이 있다.


“말 잘 듣네”라는 칭찬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가 어른의 입맛대로 움직여줘서 고맙다는 뜻, “착실하네”는 바보같이 우직하게만 사는 게 안타깝다는 뜻, “일 잘 하네”는 듣기 좋은 말로 꼬드겨서 일을 더 시키겠다는 뜻, “착하네”는 싫은 소리 못하는 네가 만만하다는 뜻이라는 것.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다. 칭찬도 꼬아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대로 듣기 좋은 칭찬이 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도 일단은 덮어두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다. 착한 여자친구를 가진 남자, 착하다는 말에 기분 좋게 웃고 넘기는 여자, 서로 크게 좋아하진 않지만 연애는 하고 싶으니 일단은 만나고 있는 남자와 여자. 그렇게 단순하고 화목한 그림만 그려 나가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평범한 연애지만, 이건 나에게도 그에게도 겉만 멀쩡하고 속은 잘못된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나답지 않게 우스운 꼴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






훗날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오고, 꽈배기처럼 베베 꼬인 내 속을 곱게 펴서 세상과 보조를 맞추고야 말겠다는 의욕도 같이 꺾였다. 꽈배기는 나날이 단단해져갔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여러 가지 칭찬들이 사실은 칭찬이 아니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정언명령처럼 알려져 있던 여러 가지 진리같은 것들이 사실은 다 헛소리임을 알게 된 후 사람을 피해 방 안 깊숙이 나를 구겨 놓은 데에는, 내가 꽈배기를 물고 태어난 탓도 있지만 그 사람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지분도 분명히 있다.


사람들이 모두 완전한 악인이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의 무의식에 깔린 이기심과 우월의식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잔인한 건 사실이다. 나 또한 그렇고, 사람 자체가 때론 열 길 물속보다도 깊고 때론 말 한 마디에도 훤히 속이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이 사람을 마지막으로 연애를 못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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