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의 메타포 이해하기
명왕성은 명계의 왕 즉, 저승의 신 하데스를 의미한다. 어쩐지 어원부터 불길하다. 이름의 저주 때문일까, 과학계의 논쟁 끝에 명왕성은 결국 행성의 지위 박탈이 선고되어 왜소행성으로 강등된다.
이름이 내린 저주가 하나 더 있다. 새롭게 발견된 원소에는 행성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당시에 명왕성(pluto)의 이름을 붙인 새 원소가 바로 플루토늄이다.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바로 그 플루토늄 말이다. 명왕성을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의 어린 딸이 그리스 신화를 읽다가 지은 그 이름엔 아무래도 강력한 힘이 있는 듯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 운명적인 서사를 문학계가 가만 냅둘 리 없다.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된 이후 우후죽순 사용되었던 메타포에는 당연하게도 일정한 문법이 있다. 퇴출당한 행성, 작고 힘 없는 행성, 이상한 궤도를 달리는 행성, 소속이 없는 행성, 음침한 이름을 가진 행성, 죽음을 달고 다니는 행성 등등 갖가지 타이틀을 가지는 이 ‘명왕성 코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명왕성은 소외된 자들의 마음의 별이라는 것.
고독한 사람들이 이렇게 명왕성에 이입해왔으나 한가지 중요한 반전이 있다. 명색이 ‘행성’이었던 명왕성에게는 당연히 위성이 있다는 사실. 즉 명왕성은 자신을 맴도는 충실한 추종자들을 지닌 셈이다. 그중 가장 큰 위성이 있는데, 여타 행성-위성 관계와 다르게 명왕성과 그 위성은 서로가 서로를 맴도는 궤도를 가진다. 이정도면 추종자가 아니라 소울메이트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그 위성의 이름은 카론. 하데스의 지하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카론의 배를 타고 죽음의 스틱스 강을 건너야만 한다. 처음 카론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명왕성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또 나만 혼자지. 하지만 너처럼 나에게도 카론이 있을지 몰라, 이렇게 생각하면 대책없는 낙관주의가 피어오르곤 했다.
따라서 카론의 전형적인 상징은 명왕성의 곁을 지키는 친구 즉, 외로운 사람들의 희망이다. 그렇다면 카론처럼 내 주위를 맴도는 희망적인 타인만이 외로움 극복의 열쇠일까?
카론은 인간을 지하세계로 인도한다. 공포스러운 외로움의 별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그 별에 도달한 뒤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는 존재,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명왕성이 외로움 그 자체라면 카론은 나 자신이다. 인간은 자신과 대화를 할수록 외로워지지만 결국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구원받는다. 스틱스 강의 이편과 저편을 오가며 배에 인연을 태우고 또 보내기를 반복하는 게 카론의 운명이다. 카론은 언제나 외로운 별에서 출발해 다시 외로운 별로 돌아온다. 혼자가 아니면서도 결국 혼자인 셈이다. 혼자가 되기 위해 여행한 셈이다. 우리의 인생도 카론의 인생과 다를 바 없었지 않나.
그렇다고 명왕성이 ‘인간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명왕성에는 하트 모양의 스푸트니크 평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 평원의 지하에는 바다가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지하에 바다가 있다니, 자아 아래에 거대한 무의식과 잠재력이 있다는 뜻 아닐까.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은 이 평원을 최초로 발견한 인공위성의 이름에서 따 왔다. 스푸트니크의 뜻은 동반자. 까맣고 깊은 이 우주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는 인공위성처럼 우연히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나의 아래에 있는 바다 같은 상념을 파헤쳐주고, 이름을 붙여 준다.
더이상 명왕성이 고작 태양계에서 퇴출되었다는 이유로 외로워보이진 않을 거다. 저주받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 낭만적인 운명. 명왕성의 세계는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은유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