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해도 살아야 하니까
우리는 효율, 효율, 아니면 의미, 의미를 외치고 살지만 정작 우리가 보내는 대다수의 시간 중 딱히 효율이나 의미가 있는 시간은 없다. 수많은 비효율적인 시간을 들여서 노력한 것이 운 좋게 결실을 얻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 결실이 가져다주는 기쁨이 그간의 비효율적인 노력을 가려준 것뿐이다. 결실이 맺어지면, 사람들은 비로소 "그 때 내가 참 노력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똑같이 노력하고도 결실을 맺지 못한 평행우주 속의 자신을 상상해보면, 노력한 시간은 물거품이 될 뿐이다. 결실이 없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물론, 곁에서 우리를 지켜봐주던 누군가는 우리가 노력한 걸 알아주고 기억해주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것이다. 그 사람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라지면 내가 노력했던 시간들은 누가 기억해주고, 누가 알아주는 걸까. 또는 애초에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
물론 나 스스로가 알아주긴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노력한 경험이 내 안에 실력이라는 층으로 차곡차곡 쌓여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내가 결실을 맺지 못한 고군분투의 시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나는 그런 현실이 너무 슬펐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나마 기록을 해왔고, 그 시간들이 사실 명왕성에 보관되어 있다는 장이지 시인의 시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합리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작품들이 세상은 살 만하다고, 의미가 없는 일은 없다고, 개개인은 모두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작품을 읽을 때만 생기는 감상일 뿐이었다. 현실은 현실이고, 나는 작품 속 세계가 아닌 현실을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보는 현실은 보여지는 게 전부인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그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인문학적 가치,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 결과와 상관 없이 발버둥쳤던 시간들,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비밀들.. 그런 것들은 작품을 읽을 때 또는 혼자 감상에 젖었을 때나 대충 들먹일 수 있는 것들이다. 새벽 내내 그런 것들에 연연하며 힘을 얻다가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보이는 게 전부인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절망감에 힘이 빠진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살아가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태어나서, 열심히 발버둥쳐 살아남아야 하는 그런 의미 없는 비효율을 지속하는 것이 삶이다. 자살은 금기시되어 있고, 죽고싶은 수많은 이유가 있어도 죽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발목을 잡곤 한다.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세상을 더 싫어지게 만든다.
왜 누군가는 자신의 출생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오래 살고 싶어하는 반면, 누군가는 세상을 원망하고 존재 자체를 후회하면서 빨리 죽지 못해 안달인 걸까. 지금 불행한 사람은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야 행복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지금 행복한 사람들도 불행해지는 날이 올까.
삶에 애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사실 종이 한 장 만큼 가벼운 운이 작용한 것뿐이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져 만들어진 사건들, 그 사건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의 성격과 생각. 그건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운명도 아니었고, 그저 우연이다. 내가 겪게 되는 수많은 우연들이 나를 만들어낸 것뿐이다.
그런데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우연들은 사실 나의 의지가 빚어낸 기회였다. 내가 있을 장소, 내가 봐야할 것, 내가 해야할 것.. 어느 하나 내가 정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세계에 한해서, 의지는 우연과 동의어다. 의지와 우연의 차이가 없는 만큼, 의미와 무의미의 차이도 없다. 무의미도 하나의 의미이다. 내가 삶에 부여한 의미는 바로 무의미이다. 열심히 살겠다거나, 무언갈 이루겠다거나, 좋은 사람이 되겠다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고야 말겠다거나 하는 허황된 꿈들은 무기력의 너머에 버린 지 오래다. 꼭 살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하지도 않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타오르는 날에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다가도, 죽고 싶어지면 하루를 암울하게 날린다. 그렇게 기분대로, 태도대로 사는 거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할 여지가 현실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면 모든 게 편해진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도 운 좋게 주어진 것에 불과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들도 운 나쁘게 나에게 닿지 않는 것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열등감도 패배감도 무력감도 조금은 해소된다.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으면 된다. 효율적으로 잘 살려는 마음을 버리면 된다. 의미가 있든 없든, 효율적이든 아니든, 그냥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