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트렌드 2026
내 지출 중 가장 큰 것은 식비다. 만 원대를 넘지 않는 메뉴를 찾기 힘들어진 요즘, 커피값이라도 아껴보려고 믹스커피를 활용하고, 가능하면 도시락도 싸본다. 하루하루 “이게 내 삶에서 진짜 필요한가?”를 묻다 보면, 포기되지 않는 것들이 남는다. 놀랍게도 내 삶에서는 기부가 그중 하나다.
나는 2년째 정기적인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불경기 속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자발적으로 내 시간과 돈을 내어놓는 이유는 뭘까? 나의 경우 '쉬워서'이다. 아주 쉽게 좋은 사람이 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감정이 꼭 나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각종 기부런, 굿즈를 증정하는 모금활동 등이 눈에 띄게 많아진 느낌이다. 이 긍정적이지만 신기한 현상을 <기부트렌드 2026>이 분석해 주길 바라며 집어 들었다. 지금 사회 트렌드 속에서 기부는 어디에, 그리고 왜 자리하고 있는가?
<기부트렌드 2026>은 기부자의 마음과 모금자 및 단체, 그리고 기술이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설명한다. 총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1장에서 정의해 보는 오늘날 ‘기부의 가치’다. 필코노미(feelconomy)가 떠오르며 기부는 일종의 감정관리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크고 깊은 '감정'이 있고, 일상을 물들이는 가벼운 '기분'이 있다. 기부는 좋은 기분을 누적시켜 긍정적인 감정으로 발전시킨다.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메타센싱이다. 메타센싱이란 내 감정이 움직이는 순간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능력을 말한다. 누군가의 사연을 보거나, 어떤 장면에 마음이 울컥하는 그 찰나를 스스로 포착하는 것이다. 그 순간이 기부와 연결된다. 내 감정이 움직인 자리에 행동을 덧붙일 때 기부는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AI 시대가 되면서 인간만이 갖는 감정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책은 모금가가 AI를 활용하는 것에 있어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이 캠페인 문구도 쓰고 이미지도 만드는 게 쉽다 못해 자연스러워진 요즘이다. 그렇게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이 쉽게 설계될 때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기부가 ‘공감과 연대’가 아니라 ‘설계된 감정 자극’에 반응한 소비로 바뀔 위험이 생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이 너무 손쉽게 만들어질수록, 기부자는 어느 순간 내가 진짜로 연결된 것인지, 그냥 설득당한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이 클릭과 전환을 위한 소재로 쓰이면서 존엄이 훼손될 수도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모금은 기술 활용 자체보다, 어디까지가 설득이고 어디부터가 조작인지 윤리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여기서 진정성과 콘텐츠 문법 얘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요즘의 콘텐츠는 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 이동하고 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참여하고 움직이며 ‘하는 것’이 된다. 기부런이 좋은 예시이다. 서사가 있는 콘텐츠를 통해 기부를 독려할 때, 기부는 단지 착한 일이 아니라 더 좋은 사회를 확신하는 의지가 된다. 내가 바라는 사회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강화된다.
책은 대한민국 기부현황 통계, 언론분석 보고서가 담긴 부록으로 독자에게 확신을 주며 마무리한다. 막연하게 ‘기부가 좀 더 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전년 대비 기부율이 올라갔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하니 기분이 색달랐다. 트렌드, 유행은 결국 지금 우리가 어떤 결핍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기부는 우리가 여전히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확인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방법이 되어가고 있다. 기부는 돈을 ‘잃는’ 일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회복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내가 끌려가듯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선택하는 사람이 된다는 점에서 기부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 된다. 책은 기부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AI와 인간의 차이에 대해 꾸준히 언급한다. 비단 지금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라기보다, 기부라는 행위 자체가 무척 비합리적이기에 그런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나는 AI와 인간의 결정적 차이는 결국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확률을 따지면서도, 끝내 확률 바깥으로 한 발 내딛는 존재다. 승률이 1%인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 1%의 가능성을 향해 움직인다. 결국 2026년 기부하는 마음은, 더 나은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희망에서 오는 것일 테다.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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