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

by 채수빈

오랜만에 이 시를 다시 읽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 24일

(오감도 시제1호)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04.jpg 사진 출처: 공놀이클럽, 이지응


공놀이클럽과 종로문화재단이 공동제작한 영어덜트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는 시인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는 항의로 중단된 <오감도>는 다시 읽어도 난해하다. 그렇지만 애초에 독자에게 자신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이 시의 목적은 아니었을 것 같다. 시인 이상은 오히려 독자에게 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아해(아이)는 무엇이 무섭고, 왜 질주하는 걸까? 어떠한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걸까? 혹은 그저 이유 없이 질주하고 있는 걸까?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07.jpg 사진 출처: 공놀이클럽, 이지응


<어린이연극 오감도> 속 아이들은 "무서워!"라고 크게 외치며 무대를 질주한다. 태어나는 것부터 나이 드는 것까지, 세상은 무서운 것 천지다. 아이들의 '불안 리스트'를 들으며 내가 무서웠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1. 제1의 아해가_태어나기 무섭다그리오

2. 제2의 아해도_달리기 무섭다그리오

3. 제3의아해도_부모님 무섭다그리오

4. 제4의아해도_집 무섭다그리오

5. 제5의아해도_학교 무섭다그리오

6. 제6의아해도_서울 무섭다그리오

7. 제7의아해도_스마트폰 무섭다그리오

8. 제8의아해도_아이돌 무섭다그리오

9. 제9의아해도_나이드는것 무섭다그리오

10. 제10의아해도_꿈 무섭다그리오

11. 제11의아해도_노키즈존 무섭다그리오

12. 제12의아해도_전쟁 무섭다그리오

13. 제13의아해도_나 무섭다그리오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 작품 구성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09.jpg 사진 출처: 공놀이클럽, 이지응


연극을 보며 느낀 것은, 무서움은 대개 사랑하는 것을 잃을까봐 혹은 세상에 뒤처질까봐 생기는 감정이라는 점이다. "달리기 무섭다그리오"라는 것은 단순히 몸이 지쳤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속도가 나를 소외시킬까봐 드는 공포감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는 불안하고 무섭다. 더구나 어른들은 '무섭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상황에 놓일 때가 많기에, 아이들이 대신 무섭다고 크게 외칠 때마다 이상한 감정이 든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03.jpg 사진 출처: 공놀이클럽, 이지응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용감해 보여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어느새 감정을 쉽게 모른 척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이런 나 또한 그들의 무서움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고민하는 사이,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가 지워진다. 두려움을 지우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무서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무서움을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진다는 걸 발견한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5.jpg 사진 출처: 공놀이클럽, 이지응


아이들의 13가지 ‘무섭다’는 공통적으로, 아이가 환대받지 못하는 환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연극을 보며 ‘노키즈존’이라고 적힌 곳 말고도, 아이들이 눈치 보게 되는 공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아이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세계를 망치지 않는 것이다.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는 ‘열린 객석’으로 운영된다. 울음과 웃음이 더 적극적으로 허용될 때, 관객은 긴장을 한층 내려놓고 공연 안으로 들어간다. 객석이 들뜨면 배우도 더 마음껏 움직이고, 관객 역시 눈치 보지 않고 감정을 내보낼 수 있다. 처음에 어린이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나올 때마다 괜히 어른들보다 훨씬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그들은 배우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3.jpg 사진 출처: 공놀이클럽, 이지응


연극의 마지막에는 어린이 배우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자신을 나타내는 것들을 꼴라쥬해 표현한 엔딩크레딧이 등장하는데, 학창시절 미술 시간이 생각나 웃음이 지어졌다. 미술 시간을 싫어한 아이들은 많이 없었다. 미술 시간에는 칭얼거리며 시작한 아이조차 어느새 말없이 자기만의 세계로 흠뻑 몰입하곤 했다. 학년이 올라갈 수록 줄어드는 예체능 시간에 서운함을 느꼈던 기억도 난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0.jpg 사진 출처: 공놀이클럽, 이지응


무대 위는 질주로 가득하다.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달리지 마”가 아니라 “달려도 괜찮아”까지 품는다. 멈춰도, 달려도, 어느 쪽이든 괜찮다는 믿음을 건넨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처럼 어린이 배우들이 이끄는 작품을 어쩐지 쉽게 예매하지 못했다. ‘어린이극’이라는 말에 내가 먼저 만들어둔 틀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는 그 내밀한 선입견을 단숨에 깨뜨렸다. 이제 공놀이클럽이 다음에 어떤 질문을 무대 위에 올려놓을지, 무척 기다려진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

(정말 웃고 울었던 작품!! ㅠㅠ 감사합니다!!)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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