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획하는 일

길을 잃을 때마다 떠올릴 '사람'

by 채수빈


최근 회사에서 새롭게 맡게 된 일이 있다. 바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기획과 제작 편집까지 모두 내가 한다. 즉 1인 PD가 된 셈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잘 헤쳐나가고 있어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인터뷰 영상을 좋아해 매일 누군가의 인터뷰를 챙겨봤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해왔으니 적어도 좋은 인터뷰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된 셈이다.

내가 인터뷰 영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제목부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미 공감할 수 있었다. 모든 콘텐츠는 결국 본질적으로 '사람'을 기획하는 일임을 알고 있다. 정확히는 '살아내는' 사람이다. 제작 업무가 SNS 업로드와 다른 점은 살아내는 사람을 보여줌에 있다. 살아내는 사람과 보여주는 사람은 다르다.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장면 하나일 수 있으나, 살아낸다는 것은 수많은 서사와 번외의 일들이 함축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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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편은지 PD는 살아내는 사람을 콘텐츠에 담아내기 위해 실패하고 성공했던 일들을 진솔하게 풀어나간다. 그리고 하나의 챕터가 끝날 때마다 '기획자의 메모' 코너를 통해 중요한 내용이 기억에 남게끔 한 번 더 정리해 주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별첨을 통해 사람 중심 기획의 공통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정리해두었다. 여기서도 저자가 다시 한번 당부하는 것은 '사람'이다. 기획하는 것이 프로젝트이기에 일정한 흐름과 단계 속에서 구체화될 뿐이지, 사람은 결코 도식화될 수 없다는 점을 한 번 더 당부한다.



그 사람의 미래를 함께 상상해주기


PD로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섭외를 할 때다. 저자는 "다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고 우는 아이가 정말 모든 게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 준다. 단호한 No는 실제로 간절한 Yes, Please이다. 나란히 앉아 출연자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엄청난 기획의 실마리가 된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현재보다 미래가 궁금하다. 저자는 "당신은 이렇게도 보일 수 있어요"라고 다정하게 상상해 주는 것이 사람의 미래를 기획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섭외할 때의 팁일 것이다. 미래를 함께 상상해 주는 것 말이다.

누군가의 정제되지 않은 일상을 훔쳐보는 것이 흥행 공식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면, 기획자 누구든 그렇게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문제는 이런 날것의 모습, 쉽게 말해 민낯의 일상을 대부분 숨기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

데이트에서 개미 눈곱만큼 먹고 연신 배가 부르다던 청순한 여주인공이, 집에 와서 와구와구 비벼 먹는 양푼 비빔밥. 90년대 멜로물의 클리셰 같은 장면이었지만, 이보다 나약한 인간의 내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없었기에, 아마도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필사적으로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인간의 본능적 허기 사이의 충돌 말입니다. 콘텐츠 기획과 그 대상과의 인터뷰가 쉽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럴 때, 상대의 진짜 언어가 나오게 하는 방법들은 존재합니다.

저의 경우 기획 대상과 인터뷰를 할 때 주로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절친은 당신을 뭐라고 부르나요?"


상대가 가장 친근한 사람을 떠올려 긴장을 풀게 하고,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나 언어로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대화 내내 굳어 있던 상대도, 일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친한 사람을 얘기하면 일단 미소가 나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진 것입니다. ... 표면적인 대화로는 절대 나올 수 없었던 기획 대상의 일상 언어를 획득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상 언어는 상대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p. 153~155



불안은 좋은 시작점이다


편은지 PD의 철학 중 내가 가장 공감한 것은 ‘대상을 예뻐 보이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결과물에서 PD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에 시선을 하나로 고정시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다만 시작점을 어디서 잡을지는 중요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시작점으로 좋은 것은 ‘불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불안할 때 '숨기고 싶었던 진짜 나'를 드러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기획의 출발점은 멋진 나가 아닌 불안한 나다. 결핍을 이해할 때 진짜 연결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이상하게 불행을 얘기하는 제목에 클릭을 더 많이 할 때가 있다. 내 불안 또한 해소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 콘텐츠는 어떤 불안을 건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불안이 나약함이 아닌 공감의 출발점이 되어 누군가의 결핍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혁신의 심상에 속지 말자


당장 실험실에 틀어박혀 세상에 없던 재료를 조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훌륭한 기획이 아닙니다. 내내 곁에 있었지만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았던 그늘진 어떤 것에 따뜻한 빛을 쪼여주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면 성공적인 '사람 기획'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전 컴컴한 방에서 약간의 방향을 틀어 중요한 책의 문장에 독서등을 비추듯 크게 물리적 힘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 아닙니다. 더 희망적인 점은 자기 전 짧은 독서 또한 매일 할 수 있듯이 사람을 조명하는 일 또한 일상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p. 22~23

또한 ‘기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혁신적인 심상이 있다. 다만 그것에 속지 않고, 일상에서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때 '자기 말'이 필요하다. 자기 말을 할 수 없다면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요즘 누가 ~해. ~하지”라는 말에도 속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요즘 누가?라는 이 네 글자가 기획자에게 있어 수많은 가능성과 사고의 회로를 단절시킨다는 것에 공감한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해야 하는 것에 가깝다.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딩에 가깝다. 마케팅은 제품을 보여주는 일이지만 브랜딩은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 나이, 트렌드,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사람의 마음과 오래된 가치에 집중하는 태도가 결국 사랑받는 콘텐츠로 살아남는다. 기획자는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지겹도록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내는 사람에 가깝다.



방법이 몇 가지 없다면 유일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이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질 수 없다. 작은 회사의 PD로서 너무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럴 때는 열악함을 유일함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PD의 말에 힘을 얻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열악하다는 것은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낼 여력이 없다는 의미로, '유일함'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p.145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하지만, 특정 대상을 과감히 소외시키는 콘텐츠 역시 좋다고 할 수 없다는 것에도 동의하는 바다. 나는 누구나 내 콘텐츠를 보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거나, 자신이 찾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으면 한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을 통해, 사람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다.

ai가 나날이 발전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궁금해한다. 당근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며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고, 어느 때보다 새로운 사람과의 모임을 부르는 플랫폼들이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 유튜브 내 ‘댓글 모음’ 콘텐츠가 자주 보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콘텐츠를 볼 때조차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사람은 평생 사람을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기획자가 끝까지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다.


이제 콘텐츠를 만들며 길을 잃을 때마다 떠올려야 할 것은 간단해졌다. 내가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다.


*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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