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을 위한 디자인 - 올리비아 리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 청소, 정리를 하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작은 문제 해결을 완수하면 자기 효능감이 생겨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청소, 정리는 가장 작은 단위의 '문제 해결'이다. 기존에 나를 가로막고 있던 것들을 치운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가능하게 하는 원점의 상태로 복구하는 행위다. 마침 디자인도 그렇다. 방정리는 어떻게 보면 방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인 것이다.
디자인과 정리가 닮아있는 것은 하나 더 있다. 사람의 움직임,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은 보이는 것을 예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사유해 본 결과로 나타난다. 이 책은 디자인을 위한 사고의 구조를 쌓아 올리는 것에 통달한 27년 차 디자이너 올리비아 리의 통찰이 담겨 있다. 자신만의 사유 체계를 쌓아가는 방법을, 저자가 한껏 나눈다.
크게 두 갈래의 길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는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이 나의 작업 방식에 영향을 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이다. 출발점이 다르나, 스스로가 쉽게 실천해야 한다는 점으로 모여야 한다는 점에서 같다.
먼저 새로운 트렌드를 접할 때이다. 그 기술과 트렌드가 기존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가려내는 것이 첫 번째로 할 일이다. 겉보기에 새로운 것들도 익숙한 원리 위에 새로운 접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어떤 부분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분석해, 어떤 것이 영향을 받고 어떤 것이 영향을 받지 않을지를 구분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전체를 다 배우지 않아도 움직인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것만 뽑아내 테스트에 들어간다.
두 번째 경우는 문제 상황에서의 학습이다. 보다 긴박할 때이다. 이때는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정의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의 구조를 세우고 나면 내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풀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눈다. 그리고 이때 내가 모르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으며 학습이 시작된다. 이 경우, 내가 새로운 방법과 도구의 존재 정도는 알아두어야 도움이 된다.
점점 수많은 도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는 이미 안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이다. 알던 것에만 매달려 있으려고 하면 성장할 수 없다. 이른바 언런(unlearn)을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언런은 ‘비우고-배우고-전환하고-내재화’하는 흐름을 거친다. 비우고, 비워진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운다. 그다음 배운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반복적으로 실천한다. 이때 효과와 결과를 직접 경험하며 변화가 현실이 되는 것을 체화한다. 이렇게 구조화된 교훈을 루틴에 배치하고, 반복할 때 언런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장을 만든다.
교육학에서 언런이 런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미 내 안에 뿌리내린 지식, 습관, 신념, 행동 방식을 의식적으로 버리거나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인지적 저항과 심리적 불안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죠. 오래 반복된 습관과 사고는 거의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배울 때도 무의식적으로 예전 방식에 기대게 되고, 때로는 그것이 새로운 학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됩니다. 또한 언런은 새로운 걸 배우기 전에 내가 믿던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잘못되었거나 시대에 뒤처진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해체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자기 정채성을 흔드는 불안과 저항을 불러옵니다.
p.121
사실 이 지점이 완벽주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내게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이다. 나는 배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해 금방 포기해버리곤 했다. 하지만 학습은 리스크가 아닌 선점의 모험이다. ‘내가 가진 것이 더 이상 쓸모없을 수 있다’는 자각, 안전하게 새로운 방식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 반복 훈련이 중요하다.
나에게 이 두 갈래 학습 방식은 차이가 분명하지만, 결국 같은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추상화 → 구조화 → 적용 → 검증’이라는 동일한 사고 루프 안에서 움직이고, 최소의 학습으로 최대의 적용을 끌어낸다는 원칙도 같습니다. 그래서 두 갈래는 ‘다른 출발점, 같은 회로’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거품인지 가려내는 ‘추상화’와 ‘그것을 다른 나의 지식이나 경험, 정보와 연결하는 ‘구조화’입니다.
p. 51
책을 읽으면 디자인을 넘어 일의 본질을 다시 설계하는 것의 핵심이 ‘구조화’ 임을 쉽게 깨닫게 된다. 저자의 개념을 빌리자면, ‘무심한 질서’를 구조화를 통해 계속 세우며 자유로움을 찾는 것이다. 이 구조화는 ai 프롬프트 설계와 매우 닮아 있다. 다만 ai는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는 일까지는 대신해주지 못한다. 정의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작업이다. 심지어 ai가 요약해 준 것을 해석하는 구조조차 ai에게 맡기는 행태가 나타나는 요즘이다. 그러나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디자인이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나의 일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미궁에 빠질 때마다 다시 찾아야 할 것은 본질이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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