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

어떤 이야기는 함께 살아낸다

by 채수빈

* 아래는 기묘한 이야기, 해리포터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


나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드라마는 '사랑한다'. 시간이 쌓이면 애착도 생긴다. 내가 사랑하는 드라마는 주로 2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반복재생이 익숙한 드라마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나도, 곧바로 파일럿 에피소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소위 '밥친구'로 통하는 드라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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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이를 컴포트 쇼(Comfort Show)로 부르는데, 힘든 시기에 위로를 얻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반복해서 보는 익숙하고 편안한 드라마나 시트콤을 말한다.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며, 대개 예측 가능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작품들이 많다. 나의 경우 시트콤 <프렌즈>가 딱 그렇다.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친구들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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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복재생이 어렵지만,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함께 '살아내는' 드라마들이 있다. 올해 1월 1일에 최종 피날레를 맞이한 <기묘한 이야기>가 내게는 그렇다. <기묘한 이야기>는 Edge-of-your-seat drama(손에 땀을 쥐고 보게 하는 드라마)로, 흥분이나 긴장감으로 인해 의자 깊숙이 기대지 못하고 몸을 앞으로 숙여 의자 끝에 앉은 모습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야기를 그저 관전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내게 한다. 작품 속 아이들이 시즌을 거듭하며 성장해 있을 때마다, 내게도 내밀한 변화가 생겨나곤 했다. 성장하는 순간, 다신 돌아가지 못할 순간 또한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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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시리즈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작품은, 바로 90년대생들의 원조 '기묘한 이야기'인 해리포터 시리즈다.


재미있게도, 해리포터와 기묘한 이야기는 무척 닮은 점이 많다. 인물별 역할뿐만 아니라 촬영 구도가 비슷한 장면마저 보인다. 세계관과 작품 전반의 느낌은 무척 다르기에 표절 논란은 나오지 않았으나, 두 작품의 닮은 꼴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이 닮은 꼴은 신화적인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서사 구조, 바로 인간이 수천 년 동안 반복해 온 '선택받은 아이'의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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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시작, 어린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사건부터 흡사하다. 해리 포터는 유아 시절에 주적 볼드모트와 마주친다. 기묘한 이야기의 윌 바이어스와 일레븐도 유년기에 베크나를 만나게 된다. 사악한 적들은 주인공의 이마에 흉터를 남기거나 뒷목에 표식을 남긴 채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주인공 내부에 은밀히 침투해 그들을 호시탐탐 노린다. 아이들은 이 필연적 연결에 영문모를 고통을 경험한다. 주변의 시기와 원망이 섞인 시선을 받아내는 것은 덤이다.


볼드모트 '톰 리들'과 베크나 '헨리 크릴'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무척 매력적인 천재들이었다. 다만 고립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탓에 점점 인간성을 잃은 존재로 변모한다. 그리고 점점 커져가는 자신의 능력을 주체하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기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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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적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각성이 일어난다. 고통을 겪은 주인공이 적과 다른 선택을 해냄으로써 결국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볼드모트와 베크나는 단순한 안티테제가 아니라 주인공 안의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빌런은 영웅으로 하여금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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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주인공은 다른 선택을 해낼 수 있을까? 두 시리즈에서 모두 빌런을 가볍게 압도하는 주인공의 초능력은 '사랑'으로 묘사된다. 친구와 가족에게서 받은 애정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한없는 자비를 베풀게 만들고, 두려울 것이 없게 만든다. 특히 두 이야기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모성애다. 해리가 몇 번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친어머니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고대 마법 덕분이었다. 그는 절친 론의 어머니로부터도 애정 어린 챙김을 받으며 새로운 가족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해리를 살린 것은 다름 아닌 라이벌 말포이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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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의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로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사들이다. 한평생 딸을 찾아 헤맨 일레븐의 친어머니는 아주 짧게 나오지만 일레븐이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본능적으로 자식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윌의 엄마 조이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온 세상이 뜯어말려도 기필코 윌을 찾아 함께 호킨스로 귀환한다. 자식을 살리려 맨몸으로 괴물 앞에 뛰어드는 카렌은 파이널 시즌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해리포터와 기묘한 이야기 모두, 신화적 구조를 통해 어린 시절의 아픔을 매듭지은 이야기이다. <기묘한 이야기>는 초능력을 지닌 소녀 '일레븐'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시작한 존재인 윌이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 이런 영웅의 여정을 충직하게 따르며 탄생한 윌의 각성 장면은 손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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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영화나 소설의 배경이 되는 청소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나의 영웅이 되어야 하는 시기다. 아이들의 성장통은 그들의 싱그러움에 가려져 있다. 세상은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그들이 상처를 입는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폭력, 미성숙한 어른들이 가정에서 대물림 하는 상처, 그들을 마땅히 지켜줘야 할 사회가 도리어 그들을 실험쥐로 이용한다. 그렇게 생기는 유년기의 트라우마는 '베크나의 저주'에 노출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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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에서는 그 저주를 푸는 방법으로 '음악을 통한 기억 소환'을 제시한다. 이 역시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행복한 기억으로 소환되는 '패트로누스 마법'과 비슷하다. 기묘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한 건, 저마다 최악의 시기에 자신을 건져 올려주었던 무언가를 떠올려서이지 않을까? 기묘한 이야기는 80년대의 오마주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 외로움을 이야기로 극복한 사람들을 위한 헌정 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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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묘한 이야기> 또한 누군가에게 기억 소환이 될 이야기로 돌아갔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는 단순히 드라마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함께 불러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드라마라는 매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에도 기고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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