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맵핑하는 신념
맵핑(mapping)은 컴퓨터공학 용어로, 특정 정보를 다른 형태의 정보로 변환·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며, 영상을 다양한 형태의 물체에 투사하는 미디어 표현 기술을 가리키기도 한다.
히틀러에 대응되는 한국인 주인공 ‘한들호’는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다. 2036년 취임식장에서 그는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과정을 회상한다.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그는 미대 지망생이었지만 번번이 낙방한다. 이후 공무원 시험을 3년째 준비하던 그는, 어느 날 아파트 재활용 수거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와 시비가 붙는다. 그는 이를 카메라로 촬영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그 일을 계기로 ‘무개념 행동을 박제하는’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이후 흔히 말하는 ‘성공 신화’처럼 그를 돕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괴벨스에 대응하는 무명 연극배우 ‘고보슬’은 창의적인 기획력과 연출력, 그리고 강한 충성심으로 그의 오른팔이 된다. ‘룀’을 연상시키는 서울대 로스쿨생 ‘최래민’은 전략과 판단을 맡고, ‘괴링’을 떠올리게 하는 전직 유도선수이자 배달 라이더 ‘정가람’은 행동대장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네 명의 청년은 도원결의를 맺고, 유튜브 채널을 기반으로 정치적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이름뿐 아니라, 히틀러의 행보를 차용한 여러 장면들은 웃음을 유발한다. ‘국회의원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로 한 그들은, 유튜브 생중계를 켜고 국회로 향한다. 그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된 한들호는 옥중에서 책을 집필하고, 이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이를 기회로 삼아 정당을 창당하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모든 것을 촬영하고 기록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과연 히틀러 같은 인물이 등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공간이 달라져도, 프로파간다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더 똑똑해지는 법을 배웠지만, 동시에 더 교묘하게 사악해지는 법 또한 배워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히틀러’를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변환, 대응시킨 <맵핑 히틀러>는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점점 더 정교해지는 가짜 뉴스와 종교 집단의 선동 방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특히 취임 직전, 청와대에 들어가 어떤 일을 시작할지를 구상하는 장면에서 그는 마치 예언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들호는 때때로 예수에 빙의한 듯한 열정으로 연설한다. 그는 타인을 설득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확신을 주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혐오를 정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취향과 판단을 혼동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혐오는 본래 개인의 감정이지만,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번역되는 순간 성격이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위치시키며, 자신의 공격을 ‘방어’로 정당화한다.
또한 혐오는 혼자보다 집단 속에서 더 쉽게 강화된다. 댓글, 커뮤니티, 정치적 집단 안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개인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모두가 옳다고 말하는 것이 곧 옳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른바 ‘정상성의 착각’이 발생한다.
현실은 복잡하지만, 사람은 복잡한 설명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문제의 원인을 특정 집단으로 단순화한다. 원인이 단순해질수록 감정은 선명해지고, 감정이 강해질수록 확신은 더욱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확신은 어느새 ‘정의’의 언어를 입는다.
가장 위험한 지점은 그 마지막 단계에 있다. 사람은 스스로를 악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혐오를 행하면서도 그것이 혐오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는다. 그때, 혐오는 완전히 정의의 얼굴을 하고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가장 날카롭게 비꼬는 인물은 한들호가 아니라, 가장 똑똑했던 최래민이라고 느꼈다. 그는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정치인이 되기를 꿈꿨던 인물이다. 그래서 한들호의 사상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고, 심지어 집필까지 돕는다. 권력 앞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의 태도는, 오히려 가장 비루하게 느껴진다. <맵핑 히틀러>는 신념이 현실을 비트는 방식을 집요하게 폭로하며, 관객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맵핑 히틀러>를 보고 깔깔 웃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유튜버가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는 더 이상 완전히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익숙함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얼굴을 한 동일한 구조를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히틀러의 악행을 알고 있다. 과연 그것이 오늘의 언어와 방식으로 ‘맵핑’되는 순간, 악행이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
*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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