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보다 편안함을 택하는 순간 빅 마더는 강해진다
고백한다. 나는 뉴스를 ‘기분이 내킬 때’ 보는 사람이다. 일단 속보를 보고, 제목부터 읽고, 내 기분에 맞는 뉴스를 본다. 제대로 된 뉴스를 끝까지 본 적이 언제였는지 되물으면서도 내 알고리즘 속 귀여운 강아지 영상을 먼저 누를 때가 많다. 스스로를 알고리즘에 가두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알고리즘에 갇혀 ‘공통된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정보는 넘치는데 신뢰는 부족하고, 연결은 많아졌는데 이해는 얕아지고 있다. 연극 <빅 마더>의 ‘빅 마더’는 바로 이 ‘달콤하지만 무서운 알고리즘’을 의미한다.
작품은 미국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로 시작한다. 이 사건은 언론사 이 사건은 뉴욕 탐사 기자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기자 줄리아 로빈슨은 취재 과정에서 기묘한 사실과 마주한다. 4년 전 죽은 줄 알았던 옛 연인이 피고석의 인물과 너무도 닮아 있는 것이다. 개인적 혼란은 곧 거대한 음모의 입구가 된다. 줄리아와 동료 기자들은 사건을 파헤치며 전례 없는 대중 조작 프로그램 ‘빅 마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는 워터게이트 이후 최대 규모의 정치 스캔들로 번져간다.
소재만 보면 무거운 정치극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고 유쾌한 연출 덕에 따라가기 쉽다.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TV 시리즈적 연출이다. 연극의 시작부터 마치 드라마 오프닝 크레딧처럼 인물들이 관객에게 인사하며 외국 드라마에서 자주 볼 법한 인물 관계가 펼쳐진다. 헤어진 뒤에도 서로를 잊지 못한 전 연인, 야망과 상처를 동시에 지닌 기자들, 은밀한 권력자들 등 넷플릭스 정치 스릴러를 무대 위에 옮겨놓은 듯한 속도감이 있다. 현실보다 조금 더 과장된 톤, 드라마 특유의 ‘오버스러움’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연출이 흥미로우면서도 살짝 ‘오글거림’이 느껴질 수 있는데, 이를 중화시켜주는 것은 조한철 배우의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연기다. 특히 그가 작중 딸을 걱정하는 모습은 이 작품에서 가장 현실과 닮아있었다.
우리는 작품을 보며 자연스럽게 여러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제프리 앱스타인의 성 스캔들, 조지 오웰의 <1984> 속 ‘빅 브라더’, 각국에서 투표로 인해 발생했던 여러 사건들이 떠오른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유튜브 채널들 등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사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빅 마더>는 과장스러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음에도 가끔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빅 마더>가 최종적으로 고발하는 것은 부패한 정부도, 직업 윤리를 잃은 언론도 아니다. 가장 날카로운 반전은 결말이다. 기자들이 마침내 진실을 파헤쳐 기사를 내는 데 성공했는데, 국민들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영화 <미스트>의 마찬가지로 허무했던 결말이 떠올랐다. 모든 고난 끝에 도착한 진실이, 아무 힘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움직일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왜 그런가. 사람들이 ‘빅 마더’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이 쓴 <1984> 속 빅 브라더는 감시의 얼굴이다. “우리가 너를 보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하기까지 한다. 반면 빅 마더는 훨씬 친절하다. 당신에게 맞는 뉴스를 추천해주고, 복잡한 사안을 짧게 요약해주며, 당신이 좋아할 콘텐츠를 정확히 골라준다. 돌봐주는 얼굴, 이해해주는 얼굴, 편의를 제공하는 얼굴이다. 그러나 바로 그 친절함 속에서 통제는 더 정교해진다. 이 정교한 알고리즘은 취향을 판단으로 만든다.
직접 민주주의 역시 이 구조 안에서 흔들린다. 우리는 발달한 기술 덕분에 더 쉽게 투표하고 더 빠르게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쉽게 선동되고 더 빠르게 피로해진다. 각국의 극단적 정치 현상은 단순히 시민의 무지가 아니라, 감정과 정보 환경이 결합한 결과로 읽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빅 마더는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끝내 보여주는 것은 진실이 어떻게 조작되는가만이 아니다. 진실이 밝혀져도, 진실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면? 현대사회에서 진실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 힘을 갖지 못한다. 관심을 받아야 하고, 공유되어야 하며, 소비되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진실은 존재해도 없는 것처럼 사라진다. 빅 브라더의 시대에는 진실이 금지되었지만 빅 마더의 시대에는 진실이 무시되고 있다. 누구나 피곤한 하루 끝에는 복잡한 기사를 읽는 것보다 짧고 사랑스러운 쇼츠 영상이 더 편하다. 문제는 그 인간적인 피로와 취향이 거대한 시스템의 연료가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진실보다 편안함을 택하는 순간, 빅 마더는 더 강해진다.
<빅 마더>는 프랑스 원작을 바탕으로 한 라이선스 공연으로, 장르는 정치 ‘스릴러’ 연극이다. 연극이 끝난 후의 느낌은 프랑스 라이선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나왔을 때와 비슷했다. 프랑스 공연은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감정을 표현한다. <빅 마더>는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외면했는지 말이다.
*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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