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와 워홀을 담아낸 한 여인의 꿈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를 빛나게 만드는 것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립 미술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 143점이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에 왔다. 전시의 제목은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이지만, 실제 전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모네 이전의 유럽 거장들부터, 우리에겐 생소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그림들까지, 미술사 400년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총 9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의 첫 번째 파트를 들어서면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를 세운 필립스 부인과 필립스 대공의 초상화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은 런던에 거주하며 공공미술관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조국인 요하네스버그에 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했다.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하고 남아공, 영국의 금융계 거물들을 설득해 보조금 또한 지원받았다. 시의회와 협상하여 미술관을 지을 장소까지 구한 결과, 그녀는 본인이 런던에서 자주 갔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와 같은 미술관을, 고국에도 만들어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두 번째 파트이자 본격적인 전시의 시작은 17세기 초 네덜란드 회화를 보여준다. 17세기 초에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항구는 유럽의 사업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네덜란드에 상인, 금융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동시에 이때 그려진 그림에도 부르주아 계급의 일상생활이 많이 묘사되었다. 또한 부르주아 주택을 꾸미는 것을 위해 그려진 정물화, 풍경 그림이 많다. 세 번째 파트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이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낭만주의는 말 그대로 낭만, 즉, 개인의 감성과 직관을 중시하는데, 영국 낭만주의의 경우 '라파엘전파'가 등장하며 그 양상이 바뀐다. 라파엘전파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이전의 중세 고딕, 초기 르네상스로 돌아가려 했다. 이후 라파엘전파에서 영향을 받은 유미주의, 신고전주의 작가들이 나타나게 된다.
네 번째 파트는 프랑스에서 인상주의가 나타나기 이전 그림들이다. 이 섹션에서는 프랑스의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속 다양한 화풍과 그림들을 보여준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낭만주의를 겪은 풍경화를 발전시킨 '바르비종파'이다. 바르비종은 프랑스 파리 교외에 위치한 작은 도시의 이름인데, 바르비종파는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실적 풍경화를 자주 그렸던 화가들의 그룹을 지칭한다. 그들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했다.
다섯 번째 파트는 인상주의다. 전시의 타이틀에 등장하는 '모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파트이기도 하다. 인상주의는 불변하는 대상이 아닌, 화가가 포착한 순간을 캔버스에 그려내는 사조를 말한다. 모네, 드가, 부댕 등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화가들이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인상파는 등장할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점점 그 현대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인상주의도 다른 사조들처럼, 서서히 위기를 맞이했고, 전시의 여섯 번째 파트에서는 그런 인상주의 이후의 그림들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쇠라와 시냑이 사용한 기법, 점묘법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후기 인상주의 대표 작가들의 그림들이 있다. 폴 세잔, 반 고흐, 폴 고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영화 <물랑 루즈>에서 볼 법한 여인들을 따뜻하게 그려낸 로트렉, <절규>로 유명한 뭉크의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쉬어가는 곳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아방가르드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차 대전을 겪으며 서구에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전위예술' 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서 야수파, 큐비즘이 시작되었다. 그다음 자연스럽게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섹션이 이어진다. 2차 대전 이후 많은 이들이 전쟁을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며, 이때 미술의 중심지 또한 파리에서 뉴욕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 장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작품들이다. 필립스 부인은 미술관을 건립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술을 장려하고자 했으나, 인종차별 등의 이유로 미술관은 수십 년간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미술관에 들어온 첫 흑인 예술가의 작품은 제라드 세코토의 그림이다. 세코토의 그림과 더불어 남아프리카 공화국만의 예술을 전시의 마지막에서 향유할 수 있다.
예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1조가 있으면 뭘 하겠냐"는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돈에 대한 걱정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면,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지인들이 내게 이 질문을 되물어봤을 때, 나는 "최고의 제작진, 최고의 배우들을 데리고 뮤지컬을 제작해서 뮤지컬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었다. 필립스 부인의 마음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조국에도 멋진 미술관을 짓고 싶었을 그녀의 꿈이 생각나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작품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필립스 부인과 이를 적극 지지한 필립스 대공에게 전시의 가장 첫 장면을 헌정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유명한 작가들이 그들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정립하기 이전 시도했던 스타일의 작품들이다. 특히 고흐의 작품은 옆에 고흐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천재 화가로 불리는 이들도 이렇게 수많은 실험 끝에 자신들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만들어졌을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사조 정리가 어렵지 않게 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미술 교육이 되어줄 전시이다. 전시는 네이버 바이브와 함께하는 무료 도슨트도 제공하나, 꼭 도슨트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시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사조, 화가, 그림에 대한 3개의 설명이 너무 복잡하지 않게 되어 있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은 세종문화회관에서 8월 31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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